우리 시에는 싸고 깨끗한 물이 없었기 때문에, 의회와 시장과 주교는 늘 국고에서 20만 루블을 지원받아 수도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 30명 남짓한 부호들은 전 재산을 도박으로 잃으면서도, 여전히 질이 나쁜 물을 마시며 국고에서 돈을 지원 받아야 한다고 평생 떠들어댔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국고에서 20만 루블을 받는 것보다 그들 주머니에서 그 돈을 꺼내는 것이 훨씬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톤 체홉 [산다는 것은] (원제 ; My Life, 1896)
이 글은 내 컴에 수록된 파일명 ‘도박에 관해서’에서 긁은 내용이다.
안톤 체홉의 중편소설 [My Life]는 한 귀족 청년이 여차여차 노동직을 선택하고 그 삶에 안착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세 자매]의 ‘뚜젠바흐’나 [벚꽃동산]의 ‘뜨로피모프’의 입을 통해서 수없이 되뇐다. 하지만 지금 하려는 얘기는 ‘노동’이 아니라 ‘도박’이다.
체홉의 희곡을 이해하려면 ‘귀족의 도박 관습’을 반드시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갈매기]의 ‘소린’은 왜 여동생에게 매번 쪼잔하게 구걸을 해댔을까?
[세 자매]의 ‘안드레이’와 군의관 ’체부띄낀‘이 잃은 돈은 과연 얼마의 가치 길래 세 자매의 꿈을 산산조각 나게 만들었을까?
[벚꽃동산]의 ’가예프‘ 역시 적잖은 유산을 상속 받았을 텐데 빈털터리가 된 이유는 뭘까?
모든 원인은 ’도박‘이다.
지주들의 낭비는 정부가 부추겼다. 정부는 귀족을 돕고 사채꾼들의 발톱으로부터 귀족을 구원하기 위해 특별은행을 설립했다. 정말로 터무니없게도 자선단체는 박애사업을 위해 할당 된 기금에서 거액의 돈을 빼내어 지주들에게 빌려주었다. 특히 귀족이 아닌 사람들이 신사계급의 일원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고 강요하기란 어려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러시아 귀족들은 도박장의 빚만이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 [안나 까레니나]의 브론스끼 백작의 의견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작가와 사회, p.136
꽤 여럿 소설과 검색을 통해 확인을 했다. 귀족들은 도박 빚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오를 세울 수 있었다. “난 어제 5시간 만에 3천 루불이나 잃었소!” 하면 한편에서 “하하하! 난 일주일동안 5만 루블을 잃었다오!” 마치 경쟁하듯 큰 돈 잃은 걸 자랑삼았다.
모든 연출이 이런 꼼꼼한 해석을 해주리라 믿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세 자매]의 군의관 ’체부띄낀‘의 배역을 맡았다 치자.
안드레이와 함께 찾은 클럽에서의 카드 도박으로 처음엔 일이백 루블 정도를 잃었을 거다.
따고 싶었겠지. 계속해서 같이 클럽을 찾았을 거고 결국은 안드레이의 경우 통 털어 3만5천 루블을 잃게 된다. 자신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 여기겠지. 통감했겠지. 자식처럼 사랑하던 세 자매가 그토록 꿈꾸어 왔던 모스크바행이 좌절 되었으니까!!!
3막에서의 과음 그리고 술주정의 이유는 단 하나여야 한다. 죄책감이다. 죽은 환자가 어떻고, 안 읽은 책을 읽은 척한 게 어떻고 하는 궁시렁은 모두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을 따름이다.
3만5천 루블은 지금 돈으로 35억이 족히 넘으니까!!!
이런 거 세세하게 공부하는 연출 거의 없다. 자기 배역은 자기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배우는 스타가 되면 보상을 톡톡히 받지만 연출들은 대개 평생을 입에 풀칠하며 살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 이렇게 세세하게 공부할 여유가 없다. 가끔 드라마투르기가 붙긴 하지만 그들 역시 시원찮다. 머 대가로 한 500만원 정도 주면 몰라도. 대개 도와주는 수준이기에 이런 공부 따로 해두지 않는 한 이 정도로 세밀한 상황들을 체크해 주긴 힘들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배우라면 상황이 다르다. 실력으로 스타가 되려면 이런 공부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자료가 없는 게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누군가가 알려주겠지? 꿈도 꾸지마라!
이번 글은 자료들로 넘쳐나는 빅데이터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이기도 하고, 검색할 단어를 선택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은 책읽기에서 비롯된다는 충고 정도로 받아들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