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읽기의 즐거움
체홉의 희곡을 읽다보면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철학이나 심정을 토로하는 경우를 자주 목도하게 된다. 뜨리고린이나 뜨레블레프나 도른을 통해서 드러내기도 하고, 로빠힌이나 뜨로피모프의 입을 통해서도 간간이 드러낸다.
소설에서도 그런 경우들을 자주 접하는데, 중편소설 <등불>(1888)의 경우엔 주로 얘기를 들어주는 스탠스를 취하고, 단편 <가정교사>(1884)의 경우엔 어린 시절 절절한 심정을 고스라니 담아낸다. 그래서 체홉을 읽을 때마다 어디까지가 그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관찰의 결과인지를 체크하는 습관이 붙었다.
지금은 <시베리아에서>(1890)를 읽고 있다. 재독인데 처음 읽는 것 같다. 즐거움이 색다르다. 사할린 여행 중 초반부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탓에 올곧이 체홉의 관점과 심정으로만 인지된다. 우연히 cctv에 찍힌 빌런들 조지는 숨은 고수의 fighting같은 리얼감이랄까?
공부의 목적은 단순하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접했지만 체홉은 20대 말부터 읽기 시작했다. 물론 공연관람이야 그보다 일찍 있었지만 텍스트를 접한 건 의외로 늦었다. 어느 순간 체홉에 빠졌고, 그 순간부터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탐닉한다.
푸쉬킨,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소설들은 물론이고, 러시아의 역사도 파고 들었다. 체홉이 만났을 사건 사고들, 특별한 지인들은 물론이고, 그가 읽었을 법한 책과 당시에 접했을 새로운 지식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나갔다. 목적은 단순하다.
"어느 순간 <갈매기>나 <세자매>나 <벚꽃동산>을 찐으로 읽어낼 수 있는 시기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