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형태를 기억하기 마련이다
연습하다보면 의외로 그럴싸한 연기 장면이 구현될 때가 있다. 상대도 어마무시 각성되어 그날따라 앙상블이 기가 막히게 딱딱 맞아 떨어진다. 함정이 있다. 대부분 당시의 형태를 기억해내려는 인간의 본능이 바로 그 함정이다. 형태보다는 상태를 기억해내는 배우가 된다면 마치 타고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적은 시간을 투자하고 큰 효과를 바라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 진화의 결과다. 예술세계에서는 좀체 적용되지 않는 기작인데도 본능에 따라 인토네이션이나 포즈 따위의 형태를 기억해내려 시도한다. 결과는 늘 최악이다.
나의 연기지도는 상태를 기억하게 유도하려는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상태는 스토리와 결부되어 있다. 형태에 매달리면 스토리는 여지없이 뒷전으로 밀려버리기 십상이다. 항상 그 순간에 듣고 그 순간에 말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순발력과 즉흥훈련의 이유다. 뇌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0.2초와 0.08초의 차이다. 0.2초는 형태를 기억하는 기작이고, 0.08초는 인간의 평상시 대화 때 이뤄지는 뇌속도다.
이건 연습이라기보다는 훈련에 의해 구현 가능한 기작이다. 연기연습의 많은 부분이 훈련처럼 소비된다면 일취월장 연기가 늘 거다. 허나 앞서 얘기한 '적은 시간에 큰 효과를 원하는' 인간의 본능이 늘 문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상태를 기억하는 능력 갖추기
외워진 대사는 훌륭한 재료다. 훈련용으로 사용하기에 최고의 재료라는 뜻이다. 그 무수한 재료들로 0.08초의 기작을 훈련하는 습관만 붙히면 연기는 반드시 는다.
짜증난다/황당하다(기가 막힌다)/완전 해피하다/냉담하게/어쩔 줄 모른다/귀찮다/무조건 좋다/...
이런 전제로 대사들에 적용하라 했는데.... 대부분 화를 내고 있거나, '좋다'라는 두가지 버전으로 한정된다. 자신이 분석한 대사의 의미에 매몰되어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훈련용이라 그리도 반복해서 인지시켰는데..... 참 말들 안 듣는다.ㅜㅜ
전혀 예상치 못한 인토네이션이나 호흡 등이 발생하곤 하는데 절대 형태로 기억하면 안된다. 그저 상태로 받아들이고 훈련을 재개해야 한다. 뇌는 새로운 길(시냅스의 연결)을 거부하기 마련이다. 에너지 사용량 때문이다. 그게 연기(진짜 거짓말)일 때는 훨씬 거부감이 크다.
몰카처럼 누군가를 속일 때는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게 되고 또 그 효과도 크다. 즉흥성이 담보되기에 0.08초 기작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사를 그리 만들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에 의해서 내가 원할 때 그 상태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만 하면 정말 해볼 만하다.
간혹 공연에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형태가 몸에 붙을 때가 있다. 그건 당연히 킵해뒀다가 유용하게 쓰면 된다. 헌데 상태로 이해되지 않았다면 언젠가 껍데기만 남는다. 흔히 말하는 매너리즘이다. 내용은 없고 형태만 구사되는 경우다.
<형태>란 말그대로 어미를 올릴 지 내릴 지, 포즈를 길게 가질 지 짧게 가질 지 따위의 기억법이다.
반면 <상태>는 흐름 속의 내 의도에 가깝다.
왜 저렇게 말하지? 제압해야겠다. 납득시켜야지! 따위의 의도 혹은 의지를 말한다. 문제는 그게 0.08초에 떠오르는 자연스럽고 리얼하고 진실된 표현이어야 한다. 리액션은 앞서 내가 던진 대사의 의도만 분명하다면 그냥 그 순간에 반드시 자연스럽고 리얼하고 진실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이 역시 상태기에 가능한 기작이다.
형태와 상태는....
강화배우농부 올겨울 연기프로그램에서 발생한 표현법이다. 이전 수업이나 연습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뇌과학의 기초가 갖추어지면 어느 정도 의미가 와닿겠지만 인문학적인 접근 방식으로는 많이 난해한 내용이다. 그래도 내 수업을 받았거나 페북의 연기 글들에 익숙한 사람들은 추측이 가능하다 여긴다.
이 글은 현재 함께하는 연기자들이 우선되는 내용이며, SNS상에 기록해두려는 목적이 그 첫번째입니다. 저장했다가 꼼꼼하게 반복해서 읽으시면 나름 가치가 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