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진실일까? 거짓일까?
연극영화학과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처음 든 책은 이근삼의 [연극의 정론]이었다. 그 첫 장의 제목은 ‘인간의 욕구 ; 모방과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구석기 시대쯤 원시인들의 무슨 종교 행사나 행위들 같았다. 이후에 읽은 책들에서도 서두는 으레 그런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름 줄 쳐 가면서 읽었지만, 당시에는 그 진의를 결코 알지 못했다.
“연극 얘기하는데 무슨 원시인들 얘기가 필요해?”
세월이 흘러, 이 문제를 거론하곤 했지만 “당연히 알아야 했던 거 아냐?” 당시의 무식함에 대해서는 0.1도 기억해 내지 못하고는, 그랬던 적이 결코 없었다고 확신하면서, 모방이 뭐니 의식이 뭐니 하고 설레발을 까왔다. ‘자기기만’의 대표적인 케이스였던 것이다.
모방(模倣)은 흉내 내기일 테고, 의식(儀式)은 “연극은 원시시대의 종교적 행사에서 비롯된 거다.” 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이후,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모방이었다. 진화학을 공부하고 뇌과학을 내리 파다가 당연해보이지만 교과서에서는 결코 그리 말하지 않았던 사실 하나를 인지하게 된다. 자연의 모방이 진실이야? 모방 자체가 거짓말 아냐? 없는 사실을 마치 겪었던 것처럼 말하는 것도 거짓이고 사실보다 과장하는 것도 거짓에 속한다. 진실은 아니지 않나 싶다. ‘진실로 보이게끔 거짓말을 잘하는 것’ 정도가 맞는 표현 아닌가?
대전이(大轉移)가 일어난 4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은 아프리카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다가 드디어 유럽에 다다른다. 덩치 큰 네안데르탈인들을 만나 협동심을 발휘 그들을 박살낸다. 간혹 강간도 이루어진 탓에 현생인류의 몸엔 2%의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여 있다. 후기 구석기 시대가 꽤 길게 이어지던 어느 날, 구석기인 X가 죽은 곰을 한 마리 끌고 온다. 자기가 혼자서 잡았다고 한껏 뽐낸다. 그 날 밤, 잔치가 벌어지고 X는 흥에 겨워 경험담을 쏟아댄다.
“내가 마갈산 구렁이 언덕을 넘어오는디 이 놈이 글쎄 ‘어흥’하고 달겨드는 게 아니겄어? 잽싸게 몸을 피하고는 나무를 타고 위로 뛰어올라 두 손으로 창을 불끈 쥐고 이 놈의 뒷목에다 내리 꽂았지! 이 녀석 죽질 않더군. 나를 앞발로 사정없이 쳐내 버리더군. 난 내동댕이쳐졌지. 이 상처! 바로 이 상처가 그 때 생긴 상처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단 바위 아래로 몸을 숨겼지. 녀석은 앞발을 내밀어 날 잡으려 발버둥을 치드군. 순간 녀석의 목줄이 눈에 들어 왔어. 저기가 급소다 싶었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을 녀석의 목줄에다 힘껏 찔러 넣었어. 녀석은 고통스러워하며 창을 뽑으려 애를 썼지만 난 녀석의 동작에 맞추어 따라붙으며 계속 계속 계속해서 찔러넣었지. 계속해서. 결국 녀석은 쓰러졌어....”
X의 이야기는 진실일까? 아마 반은 거짓말일 거다. 거의 대부분이 거짓일 수도 있다.
곰이 나타나자 도망치다가 쓰러지고는 달려드는 곰을 향해 나도 모르게 창을 내밀었는데 그게 정통으로 곰의 목줄에 박혀 버렸는지 어찌 알겠는가?
이 이야기는 그 부족의 전설로 남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X는 후에 부족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 얘기는 수 십 번 수 백 번 반복되었을 것이고, 할 때마다 살이 붙었을 거다. 아마 곰을 모방하기도 했을 거고, 옆에서 지켜보던 다람쥐나 까마귀의 심정들도 대변했으리라. 심지어는 곰의 속마음과 나의 속마음까지도 말로 표현해내는 고급스런 연기술로 발전되었을지 모른다.
듣고 보는 이들이 재미있다고 하면 할수록 과장은 심해진다. 헌데 과장된 표현으로 여겨지면 재미있을라나? 진짜 같아야지. 진짜 같을수록 재미있기 마련이고 연결고리가 당위성으로 가득 채워져야(Plot) 더 진짜 같았을 거다.
..........‘진짜 같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 같다는 말이 ‘진실되다’라는 표현으로 전이된 것 아닐까?
과연 연기는 거짓일까? 진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