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겨울 김태용연극교실을 준비하며....
이번 주 금요일 밤에 첫 수업이 펼쳐진다. 매주 주말 12시간(6시간+6시간)씩 한 달간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은 꽤 스펙터클한 양상을 띠게 될 예정이다.
텍스트는 안톤 체홉의 [청혼]과 [곰]이다. 강화의 청년들은 대본 모두를 통채로 외우고 있고, 일부는 가지고 놀 정도로 남아돈다. 이들과 함께 수업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 수강생들의 경험은 남다를 거라 여겨진다.
의지 가지기
수업의 1차 목표는 여전히 <듣고 말하기>지만, 부차적인 목표가 새롭게 설정되었다. <의지 가지기>다.
주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렬할수록 본능은 일단 거부한다. 연기는 명확한 거짓 행위이기 때문에 진짜(진실,리얼)에 가까울수록 본능적으로 거부하기 마련이다. 대신 독특한 장치를 걸어서 교묘하게 빠져 나가는데, 이 역시 본능이다.
{감정에 기대기/로우톤 선택하기/모노톤으로 일관하기/일정한 리듬에 빠지기/대상 망각하기} 등등의 현상이 그것이다.
이를 타개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무의식의 개발이 그 타개책인데, 틈만 나면 배틀 붙히고, 정신없이 달려 나가게 만들고, 급작스럽게 진행 방향을 틀게 만드는 훈련 따위가 그 방안 중 하나다. 일종의 <즉흥훈련>이고 <순발력 키우기>라는 제목의 수업과 다르지 않다.
의식과 무의식
인간은 대부분 의식으로 살아 나간다 여기지만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 대부분의 삶은 무의식이 지배한다는 결론이 대세를 이룬다.
우리가 평상시 대화할 때 문장 자체를 떠올리진 않는다. 나도 모르게 문장들이 완성되어 나가는 기작(자동화)이고, 입밖에 나온 내용을 스스로 인지하면서 다음 내용들을 채워나가는 식이다.
헌데 대사는 문장과 구조가 이미 결정난 상황이고, 아울러 외워진 상태일 확률이 높다. 이를 평상시 말하듯 새롭게 떠올리면서 토해 내는 건 거의 고수거나 괴물의 경지에 다다른 배우들의 몫이다. 한 두 문장이면 몰라도 한참의 길이를 소화해내려면 절대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식은 무의식에 담긴 재료들을 꺼집어내는 일종의 트리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무의식의 재료를 수레무대에서는 Data라 지칭한다. 그 Data들을 확장하는 과정이 바로 즉흥훈련이고 순발력 향상 훈련이다.
{듣고 말해야 하고, 대상을 잃지 않아야 하고, 어미가 춤을 춰야 하고, 호흡이 떨려야 한다.}
{샤우팅이 가능해야 하고, 포즈 후 반드시 책임져야 하고, 슬픔을 극복해야 하고, 터지는 웃음이 가능해야 한다.}
{하품을 훈련해야 하고, 쥐가 난 현상을 재현할 수 있어야 하고, 오열할 수 있어야 하는} <표현력 훈련> 따위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정작 카메라에는 부자연스럽게 기록된다.
Incognito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이 모든 현상들이 모두 Data고, 필요할 때 언제든 끄집어낼 수 있게 만드는 게 훈련이다. 연습은 약속의 부문이고, 훈련은 무의식에 저장하는 과정이다.
데이비드 이글먼의 책이 길고 길었던 질문을 꽤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뇌는 라이벌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제목으로 이론을 펼친 제5장의 내용이 특히 큰 도움이 되었다.
케이크를 원하는 마음과 케이크를 포기하는 의지력을 발휘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공존한다.
인코그니토 p.154
"상대를 진짜로 제압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으나 입밖으로 튀어나온 소리는 로우톤이거나, 감정에 기대거나, 의지없는 대사 나부랭이에 불과한 그저 그런 평이한 대사로 머물고 만다. 매번!!"
화를 내는(감정에 기대기) 건 쉽지만 납득시키거나 주장하거나 제압하려는 의지는 늘 실패한다. 그건 진짜로 대상을 당황시키는 기작이기 때문이다. 뇌는 "진짜로 해버려!!"와 "머 그렇게까지!?"라는 두 라이벌이 전투를 벌이다 결국 덜 부끄러운 가짜를 선택하는데, 이 모든 게 0.08초만에 이루어지는 결정이고, 모두 무의식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