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과 입체성
지난 5년간 제일 많이 반복해서 입력시킨 단어는 {관점}이었다. 대부분 아동청소년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었는데, 공연할 때 관객의 관점, 선생님의 관점, 학부모의 관점, 교장의 관점, 모니터링의 관점 등을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미션을 주었었다. 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연기를 요구했고, 그 비밀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묻는다.
입체성이 그 해답이다. 여기서는 '뇌의 입체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시냅스의 연결고리가 빽빽하게 들어 찬 형태를 말한다. 다양한 관점을 의식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수십가지의 관점이 한순간에 {떠오르고/ 선택하고/행동하게} 된다. 거의 0.08초에 이루어지는 기작이고, 이를 흔히 '영감'이라 일컽는다. '연기'는 순발력과 즉흥이라 불리는 0.08초의 속도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코 괴물(연기고수)이 될 수 없다.
이에 앞서 "수많은 경우수를 순식간에 만족시키려면 도대체 훈련을 얼마나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보다 강력한 동기를 갖기는 쉽잖다. 훈련량도 중요하지만, 효과적인 훈련방식의 터득이 결과적으로는 유리하다. 최고의 훈련의 장은 무조건 공연이다. 대상을 앞에 두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보면 관객의 다양성 만큼이나 뇌는 매순간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내고, 그 길들이 확장되어 자연스럽게 도로망을 구축하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인프라가 바로 입체성을 갖춘 뇌의 형태다.
단계와 트랙
3개월간 진행될 겨울프로그램에서 뇌의 입체성이 연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증명해야 한다. 강화 입성 초기에는 입체적인 청년들은 아예 없었다. 감정 컨트롤도 엉망이었고, 사고가 났을 때 우왕좌왕하기 일쑤였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한없이 빈약했고, 연습도 각성되었을 때만 반짝 진행하는 의지박약의 모습으로 일관했었다. 요 2년 사이 앞서가는 멤버들이 출현했고, 자극받은 친구들의 자기반성이 줄을 이으며 꽤 숫자가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40%를 넘진 못한다. '단계'와 '트랙'은 이들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장치다.
[단계]는 역사의 분류법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삶 속에서 강렬했던 사건이나 변화들을 기억해내고, 이 기억들을 소환하란 얘기다. 그게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꿈꾸던 시기일 수도 있다. 대부분 강렬했던 기억은 {해마}에 입력될 때 바로 옆의 {편도체}가 함께 작동하기에 감정선이 생기기 마련이다. 연기자에게 있어 최고의 관찰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이다. 끊임없이 소환해야 한다. 아플 때도 있겠지만 그게 배우의 운명이다. 흉내내는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선으로 해결하는 연기를 누가 이겨낼 건가?
[트랙]은 육상의 8트랙을 빗댄 용어다. {뇌의 입체화}는 진화학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급변의 시기에 주로 이루어졌다. '호모 사피엔스'가 그랬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등장 등이 그 예다. 입체화시키기 위해 투자되는 에너지 소모를 기꺼이 받아들일 생물은 없다. 생존의 갈림길에 서기 전까지는!! 25억명이 한계라는 지구에 75억명이 살다보니 기후변화가 급격하게 요동치고, 경쟁의 끝판왕까지 치닫게 된 거 아닌가? 난 지금이 그런 시기라 본다. 이런 전제가 지칠 즈음 버텨낼 동기로 작용하기 바랄 뿐이다.
{트랙 나누기}는 뇌의 입체화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인 진행방식이다. {단계}도 일종의 트랙이긴 하지만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누어지는 분류고, 트랙은 극복할 대상들에 관한 분류다.
연기 훈련에 임하기 전에 스스로 플랜을 세우면서, 트랙 형태로 세심하게 구분하고, 각 트랙마다 제목이나 카피라이트를 신중하게 붙힌 후, 결연한 자세로 겨울 경기에 임해야 한다. 올겨울 완주하는 트랙들의 수가 하나 이상은 발생하길 바라며....
조명/무대/발레/국악/클래식/마임/몰리에르
이런 종류가 나의 20대 때 트랙이었다.
이 시대의 트랙은
BTS 정국 따라잡기/로봇춤 마스터하기/딕션의 신 되기/분석 김태용 따라잡기/엠파시스로 대사 가지고 놀기
머 이런 식이 효과적일려나?
이 글은 신입 멤버들 포함해서 강화배우농부들을 위해 작성한 내용입니다. 강화 안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어 오해의 여지가 예상됩니다. 페북의 기능에는 기록성도 있기에 그 편의성에 탑승한 거라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
사진은 이진형박사의 LVIS라는 스타트업의 프로젝트인데, 뇌를 디지털화시켜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년쯤 지나서 휴대용 뇌전도 기기가 개발되면 자신의 뇌 운동을 감지하면서 훈련하는 연기프로그램을 진행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