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무대Wagonstage라는 극단명은 공연을 원하는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서슴지 않고 판을 벌일 수 있는, 이동 가능한 바퀴 달린 무대를 뜻한다.
1992년을 시작으로 올해 창단 32주년을 맞이한 극단 수레무대는 1998년 체홉 페스티벌 참가작 <청혼>, 1999년 요일 레퍼토리, <스카펭의 간계> 등의 작품으로 대학로의 색깔 있는 극단으로 자리 잡았으며, <파워 스카펭>으로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 <유모차 위의 작은 동화 어린왕자>로 서울어린이연극상 우수작품상, 연출상, 남녀연기상 등을 싹쓸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은 한국 최고의 코미디 전문 극단이다.
5년간에 안식년을 마친 후, 2018년 강화군으로 정착한 수레무대는 강화도를 거점 삼아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1기 1992~2000 (잠포, 함안) : 공포의 외인구단
2기 2000~2008 (동자동, 하월곡동) : 교과서 만들기
3기 2008~2013 (화성) : 내실 다지기
4기 2018 ~ (강화도) :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만들기
1기, 공포의 외인구단
1992~2000년, 극단 수레무대 출발하다
1992년, 수레무대는 통영의 잠포마을에서 돛을 올렸다. 한국에 전례없는 연기술을 터득하고 오롯이 연극 제작에만 몰두하자 의견을 모았고, 괴물같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외딴 섬에서 “지옥 훈련”을 했다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모토로 삼았다. 당시 뜻을 모았던 단원들은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초·중반 청년들이었고, 이들은 논 위에 세트를 세우고, 산 중턱에서 배우의 대사가 들릴 때까지 훈련했다.
- 1992년, 통영 잠포마을에서의 지옥 훈련
잠포마을의 한 폐교에서 <스카펭의 간계> 연습을 하다가, 산 하나 넘어 선착장에 세트를 옮겨야 했다. 그 당시 이 큰 세트를 옮길 방법은 딱 하나. 바로 강을 가로지르는 것. 뗏목에 세트를 싣고, 허리까지 오는 강을 건너 논 위에 무대를 다시 세웠다.
- 1993년, 수레무대 등장!
수레무대의 <스카펭의 간계>는 중력의 법칙을 이용한 등·퇴장이 그 특징이다. 배우들은 널뛰기나 시소를 이용하여 등장하고 공중에서 한 바퀴돌아 퇴장한다. 이 독특한 장치를 사용한 이유는 <스카펭의 간계>가 몰리에르 작품 중에서도 스펙터클한 냄새가 물씬풍기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널뛰는 무대, 정확한 리듬과 템포, 산 속 훈련으로 다져진 배우들의 발성은 당시 기성 연극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로써 수레무대는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는다.
- 1995년, 한국 코미디 <시집가는 날>
<스카펭의 간계>로 연극계를 들썩이게 했던 극단 수레무대는 2년 뒤, 한국 코미디의 대표작 <시집가는 날>으로 다시 한번 화려하게 등장한다.
실제 대나무를 엮어 만든 세트가 무대와 객석 벽면을 채웠고, 이와 같은 무대장치는 연기술과 더불어 당시 큰 화제를 불렀다.
당시 극단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공연을 올리지 못할 위기에 처했으나, 배우들이 공사장 아르바이트를 해서 극장 대관료를 마련하였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는 당시 “연극 정신”을 강조하던 다른 극단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 1996년, 생택쥐베리의 어린왕자, 인형극으로 탄생하다.
원작 속 <어린왕자>의 까다로운 은유와 비유를 연극의 환상성으로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서울어린이연극상’ 을 수상한 작품.
어린왕자를 배우 3인이 조종하는 독특한 양식을 구현하였고 마임, 영화적 연출 등 다양한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극의 주제를 더욱 명료히 드러내었다.
- 1998년 <청혼> 발표
공연 마지막 날, 60명이 최대 인원인 혜화동 1번지에 134명의 관객이 찾아왔고, 결국 배우 코 앞까지 관객석을 만들어 공연을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 1999년, <파워 스카펭> 발표
1999년, 영화 <매트릭스> 속 주인공이 총알을 피하는 슬로우 모션 장면은 당시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연극에서도 이런 문법들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파워 스카펭>은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제작되었고, 초연과는 또 다른 리듬과 앙상블로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주인 아들이 스카펭에게 화를 내는 장면에서 실제로 영화 '매트릭스'의 유명한 장면-총알이 느리게 날아가고 인물이 무용(?)을 하듯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 실감나게 무대 위에서 재현되고 있다. 관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영화를 차용해 왔다는 사실도 재미있지만,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인간의 마임을 통해 그 장면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해낸 연출력과 배우들의 기량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 1999. 09.23 김00 공연 리뷰
창단작품 <스카펭의 간계>가 단원들이 십시일반 제작비를 마련하여 통영군 바닷가 작은 마을인 잠포에서 5개월간 합숙연습에 의해 탄생한 힘의 연극이었다면 99년 재해석된 <파워 스카펭>은 대학로에서 최초로 평가받은 앙상블의 연극이었다. - 1999. 09.23 0미0 공연 리뷰
2기, 교과서 만들기
2000~2008년, 동자동에서의 재시동
수레무대는 잠포마을과 함안에서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멤버들과 동자동, 그리고 하월곡동으로 캠프를 옮겨 작업 활동을 이어간다.
수레무대 1기의 목표가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면, 2기의 목표는 “교과서 만들기”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국식 연기술과 연극 속 문법들을 정리해 나가고자 했다. 이 시기 수레무대는 연기술의 터득하기 용이한 ‘코미디’ 뿐 아니라, 인형극, 그림자극 까지 장르를 확장하여 본 극단만의 독특한 색깔을 구축한다.
- 2001년, <철학자 구름같은 연기의 세상보기>
현명한 철학자가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삶의 어려움을 이기는 지혜를 설파하는 내용이다.
철학자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인형으로 등장하는데 분절인형, 세사미 인형, 천 인형들로 종류가 다양하며, 각각의 인형 조종법과 익살스러운 연기가 그 특징이다. 3주라는 급박한 제작 일정 속에서도, 춘천인형극제에 초청되는 등 많은 호평을 받았다. 평상시 훈련의 양으로 서로 합이 잘 맞는 단원들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 2002년, 중세 소극의 대명사 <삐에르 빠뜨랑>
해학을 기발하게 표현하여 관객을 웃길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극인 파스(Farce )는 그 특성상 내용이나 드라마에서 비롯되기보다는 현란한 배우 개인의 즉흥성과 상대 배우와의 톱니바퀴 같은 앙상블 그리고 멈춤과 달림의 균형이 빚어내는 웃음보 터트리기에서 비롯된다. <삐에르 빠뜨랑>은 이러한 파스의 요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 2002년, 현대 연기술의 출발점 <코메디아 델 아르떼>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유럽전역에서 왕성하게 공연되었던 이탈리아의 전통 연극이다. 'Commedia'는 코미디를 뜻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일반적인 ‘연극’을 지칭했으며, 'Arte'는 ‘기술’ 혹은 ‘직업’을 뜻한다. 현대 연기의 출발점이 파스나 꼬메디아 델 아르떼일 수밖에 없기에 극단 수레무대는 조각난 에피소드들을 엮어 내어 하나의 공연으로 완성하였다.
- 2003년, 청혼곰
안톤체홉의 가장 유명한 단막극으로 극단 수레무대의 대표 레파토리 중 하나이다.
1998년 <청혼>을 곧이어 2003년도에 <곰>을 제작했으며, 현재까지 세미 뮤지컬, 파스 릴레이등 다양한 버전의 곰·청혼을 공연하였다.
이후 체홉의 <곰>, <청혼>은 극단 수레무대 액팅 메소드 훈련의 주요 텍스트가 된다.
- 2003년 2005년, 꿈을 이루기 위한 모험 <오즈의 마법사>
프랭크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를 실제 크기의 인형과 애니메이션, 그림자극을 융합하여 제작한 작품.
2003년 초연 당시 1500명의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이후 ‘춘천국제인형극제’에 공식 초청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기존 <오즈의 마법사>를 어디로든 찾아갈 수 있는 테이블 인형극으로 재제작한 작품.
테이블 인형극, 스크린 애니메이션, 그림자극의 다 미디어 복합 구성으로, 관객의 상상력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리드미컬하게 구성하였다. 2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극단 대표 레파토리이다.
- 2007년, 유모차에 실린 어린왕자
1996년도에 제작한 어린왕자를 유모차 무대로 옮겨 소극장 버전으로 제작한 작품.
3인 분절 인형, 유모차 무대, 솜 인형을 활용하여 어디든 찾아갈 수 있는 형태로 구축하였다.
3기, 내실 다지기
2008~2013, 화성에서의 내실 다지기
2009년, 극단 수레무대는 화성으로 다시 한번 베이스 캠프를 옮긴다.
이 시기에는 이전보다 더 다양한 배우들이 합류하였고, 레파토리의 완성도를 높이며 ‘교과서 만들기’의 내실을 더욱 다진다.
2012년을 기점으로, 극단 수레무대는 5년간의 안식년을 가지게 된다.
- 2010- 2011년, 다시 돌아온 스카펭의 간계
1993년 초연 이후, 17년만의 다시 한번 제작한 <스카펭의 간계>
- 2011 참여연극 <갈매기의 꿈>
관객과 함께 만드는 종이접기 연극.
해당 작품은 관객이 직접 배우나 스텝이 되어 공연에 참여하는 컨셉으로, 당시로서 매우 생소하고 독특한 포멧을 갖추었다.
- 2012 위선자 따르뛰프
극단 수레무대의 창단 20주년에 제작된 <위선자 따르뛰프>
수레무대의 2012년 <위선자 따르뛰프>는 한 소녀의 연극놀이로 시작된다. 인형들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된다. 소녀의 방에는 벽난로가 놓여있는데, 이곳으로 드나드는 요정은 중요 배역인 “도린느”의 역할을 한다. 이와같은 동화적인 컨셉을 활용하여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였고, 노래와 춤을 가미하여 연극의 스펙타클을 확장시켰다.
4기,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만들기
2018~현재, 강화도에서 MZ세대
2019년, 5년간의 안식년을 마친 수레무대는 인천 강화군에 자리를 잡고, 단원들을 모두 MZ세대로 구성하였다. ‘공포의 외인구단’, ‘교과서 만들기’, ‘내실 다지기’라는 기수 별 목표를 가지고 달려온 30년, 그간 모아온 노하우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4기, 수레무대의 강화도는 연기의 비밀에 대한 질문에 공감하는 2030 청년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극단의 철학을 잃지 않으면서 기술의 발달, 세상의 인식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서로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때로는 피드백으로, 때로는 경쟁으로 상호 발전할 수 있는 동료가 절실한 시대다. 극단 수레무대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다음 세대 배우들이, 동료들과 작업을 통해 치열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곳이자, 그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