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후기 종교극에서 거리극으로, 지배층에서 피지배층으로
[오마이뉴스=서상일 기자]
▲ <삐에르 빠뜨랑>은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소극이다. 빠뜨랑과 그의 아내의 모습이다. ⓒ2002 서상일
중세 후기에는 부활절극, 수난극, 성탄극, 성담극 등 다양한 종교 드라마들이 상업이 발달한 도시의 성직자 계층에 의해 공연되고 관리되었다. 공연 장소는 물론 교회 안이었으나, 이것이 후일 거리극의 모태가 된다. 그것이 점점 더 인기를 끌게 되고 내용과 규모가 확대되면서, 교회의 계단이나 교회 밖의 마을 광장 같은 곳에서 많은 관중을 모아놓고 상연하게 되었다. 즉 "교회를 벗어나 광장으로" 나가게 된다. 이와 동시에 장면과 인물들에 세속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종교극이 교회 밖으로 나오게 된 배후에는 문맹이었던 일반 신도들에게 그리스도 교의 교리와 성서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가르치기 위한 지배층의 의도가 있었으나, 이것이 교회를 벗어나 광장으로 나오면서 점차 여흥을 강조하는 극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그것이 애초에 공연되었던 교회를 모독하기조차 하는 반종교극으로 발전했으며, 더 이상 기독교적 계몽을 목적으로 하지 않게 된다. 마침내는 직업적인 배우들에 의한 세속적인 창작극으로 독립을 이루게 된다. 그렇게 종교극이 거리극으로 바뀌면서 담당층이 지배자에서 피지배자로 바뀌고, 내용 또한 지배자들의 위선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바로 그러한 서양 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소극 "삐에르 빠뜨랑"을 소개한다.
▲ 옷감을 놓고 '빠뜨랑'과 상인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2002 서상일
웃고 즐기는 가운데 인간의 위선에 대한 풍자가
"삐에르 빠뜨랑"은 유쾌한 해학과 풍자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웃음을 선사한다. 극은 사기꾼 같은 변호사 '빠뜨랑'의 집을 무대로 시작한다. 그는 경제적으로 거의 파탄에 이른 상황이나, 마누라의 등쌀에 못 이겨 옷감을 구해 오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 읍내로 나가 '기욤'의 포목점에서 그를 설득하여 옷감을 구해오려 한다.
▲ '빠뜨랑'의 아내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인을 내쫓으려 한다. 상인이 실수로 가슴을 짚은 장면이다. ⓒ2002 서상일
이어 옷감을 얻으려는 '빠뜨랑'과 외상을 주지 않으려는 '기욤' 사이에 코믹한 장면이 이어지고, 능청스런 '빠뜨랑'과 욕심 많은 상인 '기욤'의 모습은 관객을 웃음바다로 몰고 간다. 마침내 '빠뜨랑'은 훌륭한 옷감을 구하고, '기욤'은 돈을 받을 겸 저녁식사 초대에도 응할 겸 '빠뜨랑'의 집에 오기로 동의한다. 집에 옷감을 들고 당당하게 돌아온 '빠뜨랑'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매우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것이 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천하의 '빠뜨랑'은 아내와 함께 상인을 쫓을 계획을 짠다.
▲ 마침내 상인을 내쫓고 옷감을 거저로 얻게 된다. 매우 좋아하는 부인의 모습이다. ⓒ2002 서상일
상인이 도착하자 '빠뜨랑'은 침대에 누워있고 그의 아내는 그가 집밖을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한사코 우긴다. 마침내 '빠뜨랑'은 미친 척하면서 결국 상인을 쫓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이 부분이 특히, 배우들의 우스꽝스런 연기와 기상천외함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 준다. 다음 장면은 '빠뜨랑'의 농간에 놀아난 '기욤'이 자신의 양지기들이 그의 양을 몰래 빼돌린 사실을 적발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기욤'은 양지기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혼을 낸다.
▲ '기욤'이 자신의 양지기들이 양을 몰래 빼돌린 것을 알아내고 그들을 혼내고 있다. ⓒ2002 서상일
혼이 난 양지기들은 사기꾼 같은 변호사 '빠뜨랑'에게 법정에서 자신들을 변호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는 양지기들에게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그저 양의 울음소리만 내라고 주의를 주며 변호해 줄 것을 합의한다. 법정에서는 '빠뜨랑'에게 옷감을 사기 당한 바로 그 '기욤'이 양지기를 고발한 원고로 나타나는데... 상황은 점점 꼬여가고, 극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마지막 상황 역시 기상천외하게 끝이 나는데, 이는 미리 말하면 흥미를 삭감시키니 직접 수레무대(http://www.wagonstage.com)의 공연을 보기 바란다.
우리의 마당극과 유사점 찾을 수 있어
작자 미상의 프랑스 중세 소극(Farce)인 '삐에르 빠뜨랑'은 소극의 정수라 불리는 작품이라 하는데,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 재치 넘치는 대사와 배우들의 즉흥연기로 흥미롭게 재현되었을 거라 짐작된다. "삐에르 빠뜨랑"을 보며 웃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위선적이고 물욕적인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사기꾼 변호사, 허풍쟁이 판사, 욕심 많은 상인, 무식한 의사를 풍자하고 있는 점도 놓치지 않고 보면 더 좋을 것이다. 특히 이 거리극은 지배층의 연극이었던 종교극에 반해 피지배층의 연극으로서 상류층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날카롭게 풍자한 점에서 우리 마당극과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웃음은 무서운 무기이다"라고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