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수레무대의 <곰>을 보고
모처럼의 고전감상 참 즐거웠다.
한 편의 희곡을 읽기 전부터 흥분될 때가 있다. 읽어가면서부터 희곡이 영혼을 휘어잡는 존재가 될 때가 있다. 희곡이 내 안에 길을 만들어 아스라한 곳으로 뻗어나갈 때마다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던가. 희곡 중의 희곡, 고전희곡은 최고급이라는 클래식이며, 오래된(古) 희곡이되 사라지지 않는 경전(典)을 뜻한다. 따라서 고전은 지혜와 통찰을 지닌 텍스트이며, 모든 앎의 사다리이며, 교양의 절대적 보호자와 같다. 고전희곡은 시간과 장소의 거리감을 극복해서 우리들을 세상과 시간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킨다. 고전희곡은 세상을 이해하는 실타래와 같은 것이 아닌가!
연극의 고전, 희곡의 고전이 연극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나치게 작품을 각색하고, 원작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전의 쇠퇴는 기억의 쇠퇴이기도 하고 삶의 단절이기도 하다. 그리고 역사적 흐름과 단절인 동시에 세상의 질서와 결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연극은 다시 고전을 읽어야 한다.
‘2003년도 신춘단막선’(한국연극연출가협회 주최, 3월 26-30일, 문예예술극장, 소극장)이 끝났다. 이 행사는 2003년도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의 공연과 참신한 젊은 연출가들이 연출한 단막극 공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진흥원로부터 큰 지원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햇수를 거듭할수록 이 행사의 목표는 흐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운데, 안톤 체호프의 <곰>(극단 수레무대, 김태용 연출)을 보는 일은 참 즐거웠다. 공연을 보지 못한 이들은 새로 번역 출간된 <체호프 희곡 전집1>(이주영 옮김, 연극과인간, 2000)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1888년에 쓰이고 공연된 <곰>은 남편이 죽은 후 남자를 멀리한 채 집안에 머무는 여자와 빚을 받으러 바깥에서 온, 여자를 기피하는 남자를 등장시킨다. 돈 문제로 다투다 결국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즉 결투가 키스가 되는 작은 희극이다. 역자는 “간결한 것이 더 낫다”는 체호프의 말을 전하고 있는데, 이 작품의 연출도 간결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것은 공연의 맨 앞, “숨쉬는 모든 것이 기뻐한다”는 말로 계절을, “거미처럼 햇빛을 안 보고 살고 있다”는 말로 인물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대목에서 출발한다. 고전인 <곰>은 이처럼 언어를 통해서 옛부터 내려오는 삶의 즐거움과 기억을 안겨주었다. 그런 면에서 날것들이 설치는 대학로 연극 가운데, 고전희극을 주로 공연하는 극단 수레무대와 연출가 김태용의 작업은 소중하기 이를 데 없다.
호서대 예술학부교수, 연극평론가 안치운 /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