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몰리에르
프랑스 연극은 1630년에서 1650년 사이에 크게 변했다. 그 전의 프랑스 연극은 유럽의 다른 나라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1620년대에 프랑스의 종교계뿐만 아니라 정계까지 손아귀에 쥐고 있던 리실, 대승정(大僧正)은 프랑스 문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자 우선 연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사살상의 프랑스 연극의 후견자로서 또한 통제자로서 연극을 통행 종교적 도덕적이 교시(敎示)를 꾀하기도 했다. 우선 리실의 대승정은 연극이 엄격하며 교육적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될 수 있으면 희극은 배제하고 그리이스 작가들처럼 철저한 규격에 맞춘 연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모든 작가들은 삼일치법을 지켜야 한다고 교시했다. 리실의 대승정은 우선 프랑스 아카데미를 조직하여 그 회원들로 하여금 연극에 대한 이론을 정립(定立)할 것을 명하였다. 이리하여 프랑스 아카데미는 프랑스 연극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을 활발히 전개하여 연극계에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연극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는 압력 단체로 둔갑했다. 옛 작품의 규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작품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고 연극의 다양화를 타락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이 당시의 연극을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연극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당시의 대표적 작가도 코르네이유와 라시느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코르네이유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르시드」는 공연에는 성공했지만, 프랑스 아카데미에 의해 그 내용이나 형식이 불만이라고 하여 심한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이렇듯 17세기의 프랑스 연극은 역사상 신고전주의라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낳게 했지만, 지나치게 그 형식과 교시 위주에 급급한 나머지 연극의 본질에서 어긋난 연극을 배출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몰리에르 같은 자유분방한 희극작가를 낳았으니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몰리에르는 극작가이기에 앞서 훌륭한 배우였다. 다른 작가들이 엄한 테두리 안에서 고전주의적인 작품을 생산하기에 여념이 없을 때 그는 대중에게 웃음을 던져주는 활달한 희극을 쓰고 그 주연역(主演役)을 맡고 있었다. 대부분의 희극작가들이 그렇듯이, 그의 사생활은 비참했다. 극단을 경영하다 경영난에 몰려 빚을 지고 투옥되기도 했고, 가정생활은 우울했고 무대에서 숨을 거둔 외로운 작가였다. 그에게는 뚜렷한 연극론이 없었고 연극을 대중의 직시(直視)에 호소한다는 퍽 소박한 상식을 갖고 연극을 했다. 그의 상대는 대중들이었으나 그의 연극은 단순한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풍자를 통해 사회의 각계 각층을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렇게 때문에 오해도 많이 샀고 미움도 많이 받았다. 희극의 인물들은 유형적인 경우가 많지만 몰리에르의 인물들에게는 개성이 뚜렷했다. 악인도 대중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았다. 오히려 호감을 주는 악인들이었으며 종막(終幕)에서도 그의 악인은 반성하지도 않았으나 관객들로부터 미움도 사지 않는다. 그의 희극을 하이 코메디-차원 높은 희극, 또는 개성의 희극(喜劇)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몰리에르는 그리이스의 아리스토파네스 이후의 최대의 희극 작가로 간주된다.
- 세계예술대백과 [연극], 도서출판아카데미, 1988, P. 90 ~ 91
v◎ 제6장 둘째 세대의 고전주의 대예술가(계속)
몰리에르
근대 희곡은 당시 매우 유행하고 있었던 다른 장르, 즉 희비극, 목가극, 소극 등에 흩어져 있었던 갖가지 요소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서서히 구성되었다. 주된 구실을 한 것은 소극이다. 이 소극에서 몰리에르는 영감을 받았다.
몰리에르(Moliere, 1622-1672)는 빠리에서 많은 공부를 한 뒤에, 12년간 시골에서 떠돌이 배우 노릇을 했다. 1659년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이 크게 성공함으로써 루이14세의 총애를 받았다. 왕의 지원아래 그는 자유롭게 표현할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일생은 투쟁과 격무의 생애였으며 단장이자 배우요 작가였다.
그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우스꽝스럼 프레시외즈들, 1659」, 「아내의 학교,1662」, 「타르튀프,1664-1669」, 「돈 환,1665」, 「인간 혐오자,1666」, 「수전노,1668」, 「부르즈와 귀족,1670」, 「여학자님들, 1672」, 「상상병 환자,1673」
몰리에르는 극의 줄거리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단원은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다.
그는 오로지 성격모사에만 관심을 쏟는다. 그는 등장 인물들을 동시대의 사회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그들은 17세기의 독톡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들이 하나 하나가 지니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눈에 띄게 하는데도 능한데, 이런 점에서는 그들은 영원한 인간형들이다.
몰리에르는 진실을 그려 낼 줄을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희극적인 것을 만들어 낼 줄도 알았다. 그는 둥장 인물들이 처해있는 어떤 상황에서 이따금 발생 할수도 있을 고통스러운 인상을 언제나 피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 속에 조금이라도 희극적인 부분이 가려져 있다면 그것을 확대해 보인다. 그가 그의 모든 효과를 끌어 내는 것은 현실에서이지, 결코 우스꽝스러운 환상이나 재치 있는 말에서가 아니다. 그의 도덕관은 라블레나 몽테뉴의 그것처럼, 아주 실제적이고 완전히 세속적이다 이 도덕관은 각 개인이 자기의 본성을 발전시킬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각자는 남에 대해서도 똑같은 권리를 존중한다는 조건이 거기에는 따른다.
이 도덕관은 특히 애타주의적인 미덕을 찬양하고 가정생활을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 몰리에르는 문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무대에 맞는 문체이다. 힘차고, 풍성하고 , 말하는 인물에 언제나 꼭 어울리므로 작자의 개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이 보인다.
근대 희극-그 기원
근대 희극은 당시 매우 유행하고 다른 장르, 즉 희비극(喜悲劇), 목가극(牧歌劇), 소극(笑劇)등 속에 흩어져 있었던 갖가지 요소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서서히 구성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중의 어떤 것들 - 당시의 풍속이나 환경의 표현- 은 「르시드」와「오라스」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비극의 개념을 결정적으로 정착시켰을 때 거기서 해방되어 있었다. 코르네이유 자신도 이러한 요소들을, 정교하고 정확하게 관찰된 작품들 속에서 모아 보려고 했으나 거기에는 웃음을 터져 나오게 하는 효과들이 너무나도 모자랐다. 그렇다면 이 웃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낡은 국민적 장르인 소극(farce)에서 올 것이다. 육담(肉談)이며 몽둥이찜질이며 엉덩이를 걷어차는 등의 장면으로 가득차 있는 소극에서 관중은 언제나 그런 것들을 무척 좋아했다. 몰리에르는 그런 것들을 잘 이용할 줄을 알았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관찰자인 동시에 ' 소극 배우'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소극 배우' 라고 까지 말 할수 있을 정도여서 딴데서 얻은 것을 모두 소극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그 속에 녹여 넣고 그것으로 소극을 넓히고 살찌게 했다. 소극은 그에게 줄거리의 교묘한 안배와 재치있는 말의 문학적 멋보다도 먼저 감정의 소박하고 익살스런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의 희극이 그렇게 까지 국민적인 것이 된 것은 그가 그것을 기성의 전통에 능숙함을 요하는 형식으로서 선배들의 손으로부터 물려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 희극이라는 것을 프랑스의 낡은 소극으로부터 손수 끌어 냈던 것이다. 이 낡은 소극은 엉성하기는 했지만 서민의 모습을 충실히 그려 낸 창작물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것을 그 서민 정신과의 연결을 끊지 않고 완전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독보적인 존재가 된 것은 이점 브왈로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바로 그가 희극 작가들 중에서 가장 아카데믹하지 않고 타바랭에 가까운 작가이기 때문이다.
몰리에르
몰리에르의 생애, 그 성격
장-밥티스트 포클랭(Jean-Baptiste Poquelin) 몰리에르는 예명이다.
1622년 빠리에서 당시 타바랭이 그의 익살 광대질로 영원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저 퐁뇌프 다리의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연히 실내 장식업자이자 왕실의 용달상인인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클레르몽 중하교( 훗날의 루이-르-그랑 중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당시의 상류층 자제들의 중학교였다.
이어서 가상디로 부터 개인 교수를 받는 친구 집에서 데카르트와 맞서 쾌락주의를 옹호한 이 유명한 철학자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법률공무를 하여 오를레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실 장식업자겸 시종직에 종사 할 것을 서약했다. 정작 그는 무엇을 하려 했던가? 예비적으로 고전적 교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그는 법관직에 들어갈 것인가 또는 그의 지위가 확고히 되어 있었던 상업에 투신할 것인가?
그의 친구로 배우였던 베자르 집안사람들(그중에서도 마들레느 베자르)의 영향이 그와는 다른 결정을 가져다 주었는데 거기에는 아마 그의 연극적 소질도 강력히 작용했을지 모른다.어느날 그것은 스물한살 때 였다.
몰리에르는 아버지에게 편지로 왕실 장식업자의 직책에 포기한다는 것을 알리고 자기 몫의 어머니 유산전부를 ' 다음 목적에 사용하기 위하여' 요구했다. 그 목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들레느 베자르와 몇 명의 친구 및 친척들과 함께 ' 유명극단 ' (L'Illustre The'a^tre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은 매우 어려웠다. 세느 강의 이쪽저쪽에서 '유명극단'은 성공을 쫓아 다녔으나 성공은 좀처럼 오지 않고 빚만 쌓인 끝에 몰리에르는 빚쟁이들에 의해서 투옥되었다 그러나 몰리에르도 마들레느도 절망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부 프랑스의 대로를 돌아다니면서 얄궃은 운명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걷거나 말을 타고, 먼지나 비속에, 짐과 무대 장치를 싣고 가는 달구지를 따라서 1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그렇게 떠돌아 다녔다.
그런 뒤에 돈도 벌고 명성도 얻어 가지고, 일행은 마침내 의기양양하게 빠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몰리에르는 왕 앞에서 데뷔했다.(1658년) 그의 나이36세였다.
그의 고전 연구는 그에게 시의 세계을 열어 주었고 그의 빈궁과 방랑의 세월은 사물과 인간에 관한 희귀한 경험과 동시에 직접적인 관찰의 습관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어떠한 작가도 이만큼 완전한 훈련을 겪은 사람은 결코 없었다.
「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의 소극, 1659 」 이 크게 히트를 침으로써 그는 루이 14세의 총애를 얻게 되었다. 이 것은 중대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오직 왕의 지지가 있음으로 해서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한 것처럼 자유로이 의사발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성공했을 때 마다 적의 수는 더 늘어만 갔다. 그것은 프레시외들 ' 그랑 코메디앵들' [오텔부르고뉴 극장의 배우들을 가리킴], 소귀족들, 질투하는 작가들 따위다. 이러한 작가들이 아무리 중상적이고 모욕적인 ' 비판과 반(反)비판 '을 써내도 몰리에르는 그것을 묵살해 버렸다. 도 진짜이든 가짜이든 독신자들도 그의 적이었는데 이들은 「 타르튀프 」에 화를 내고 「 돈 환 」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와 동시에 몰리에르는 자유 사상가 [ 무신앙자 ]들의 비위에도 거슬렸다.
또 벼락부자가 된 평민, 귀족 사기꾼, 돌팔이 의사등도 그의 적이었다
홀로 모든 사람들에게 맞서 그러나 왕의 호의와 브왈로, 라 퐁테느의 우정에 힘입어 몰리에르는 씩씩하게 싸웠다.
이러한 격렬한 투쟁속에서도 다른 단원들의 배우요 작가였다. 자기 자신의 작품에도 남의 작품에도 발레에도 비극에도 모두 출연했으며 그렇게 분주한 활동속에서도 그 정열과 걱정과 과로의 생활속에서도 13-4년간에 걸쳐서 근 30권의 작품을 썼는데, 그중의 많은 것들이 5막극이고 또 많은 것들이 걸작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그는 마들레느의 딸인지 동생인지 하는 아르망드 베자르와 결혼했었는데 이 여자는 그보다 21세나 연하였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결혼으로 말미암아 그는 불안과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심히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심각하였고 몽상에 잠기기를 좋아했지만 감상적이지는 않았다.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를 ' 명상가 '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의 내부생활과 외부 생활에서 쌓은 숱한 경험으로부터 그는 인간의 결점과 약점, 악덕에 관해서 폭 넓은 지식을 끌어 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이상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를 실제 있었던 대로 볼 줄을 알도록 하자
그는 인간이고 배우였다. 17세기의 배우들 사이에는 이상한 풍습이 있었는데 베자르 집안사람들은 가장 타락한 사람들이 었다.
몰리에르는 그 시대의 가장 방종하고 가장 난잡한 환경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속에서도 그의 견실하고 예민한 양식과 관대하고 인간적인 본능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여배우를 빼앗아 가고 자기 작품을 경쟁상대의 극단으로 가져간 라시느의 배신도 아르망드의 경박한 행위도 그 불성실한 친구와 부정한 아내에 대해서 그를 화나게 하지 못했으며 특히 그의 지칠줄 모르는 활동과 갸륵한 정력을 끝까지 유지했다. 다 알고 있듯이 이 끈덕진 투쟁자는 자기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면서도 그리도 남아있는 모든 힘을 모아 무대에 올라가서 연출 중 닥펴온 단말마 ( 斷末魔 )의 처음 경련을 ' 억지 웃음 '으로 관객들에게 감추는 영웅적 행위를 수행했다. 두 사제를 차례차례로 불렀으나 그들은 그의 임종에 입회하기를 거절했다. 그의 유해를 성당 묘지에 묻기 위해서는 그의 미망인이 생 제르맹에 가서 왕앞에 무릎을 끊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고도 그의 매장은 빠리 대주교의 명령으로 밤중에 치러졌다.
몰리에르의 주요 작품의 개요
그의 작품을 대개 소극, 풍속희극, 성격 희극등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이만큼 부자연스런 것은 없다. 이 세가지의 희극적 요소가 극적 합당성에 따라 갖가지 정도로 섞여 있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의 소극 」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시대의 풍속을 그린 희극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정신의 결점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희극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 혐오자」나 「타르튀프」등과 같이 성격 희극 속에 분류되는 희극도 그것이 일반적인 성격들을 그림에 있어 당시 이 성격들을 싸고 있는 특수한 형태를 통해서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풍속 희극속에 분류뒬 수 있을 것이다.
몰리에르의 주요 희극 작품들을 아래와 같다.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 (Les Pre'cieuses Ridicules) (1659), 「아내의 학교」 ( L' Ecole des Femmes) (1662), 「타르튀프」 (Tartuffe)(1664-1666), 「돈 환」 (Don Juan) (1665), 「인간 혐오자」 (Le Misanthrope) (1666) ,「수전노」 (L'Avare) (1668), 「 부르즈와 귀족」 (Bourgeois Gentilhomme) (1670), 「여학자님들」 (Les Femmes savantes) (1672) 「상상병 환자」 ( Le Malade imaginaire) (1673) 이 희곡들이 개요 외에 한편의 소극 「억지의사」 (Le medecin maigre' lui ) (1666) 의 개요를 덧붙여 두자.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 (1659)
두 귀족 라그랑즈와 뒤 크로와지가 고르지뷔스의 딸과 조카딸인 마르들롱과 가토스에게 환심을 사러온다. 그런데 최근에 시골서 온 이두 처너들은 ' 빠리를 오염시킨 저 프레시외한 공기를 담뿍 들이마시고 ' 있었다.
그 여자들은 두 구혼자들을 맞아는 주었으나 그들의 순박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주 멸시하는 태도로 대했으므로 두 사나이는 복수하려고 결심했다.
그들의 주인중 하나인 말 잘하는 마스카리유라는 사나이가 호화로운 옷을 입고 두 프레시외즈들의 집에 나타난다. 그는 그의 능변과 당당한 풍채로 두 처녀를 반하게 한다 거기에 그의 친구인 조들레가 자작의 옷차림을 하고 온다 그러나 그 여자들이 ' 상류 사회 분들이 자기 집에 오시게 된 '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을 때 라 그랑즈와 뒤 크로와지가 불쑥 다시 나타나 자기 하인들을 후려치고 옷을 벗긴다. 두 프레시외즈들은 부끄러워서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조그만 즉흥적인 무도회를 열기 위해서 불러온 여자 친구들 앞에서 ' 분해 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설상가상으로 그 여자들은 고르지뷔스의 꾸지람까지 꾹 참아내야만 한다. 고르지뷔스느 태도는 거칠지만 대단한 양식을 가진 사나이다.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은 본질적으로 소극이다.
즉 종종 익살스런 줄거리에 몽둥이 찜질하는 장면이 섞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배우들은 여기서 그들의 예명 (藝名)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라 그랑즈, 뒤 크르와지, 조들레) 혹은 그들이 그역을 맡아 하는 관례적인 인물형의 이름으로(고르지뷔스, 마스카리유) 등장하기도 한다. 이소극의 제재는 아주 새로워 보인다. 즉 작가가 관찰의 소재로서 동시대의 풍속을 직접 다룬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혁신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로써 프레시외한 정신의 과장은 모두 신용을 잃게 되었으며 국왕도 몰리에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아내의 학교」 (1662)
아르놀프는 온갖 부부간의 불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한다.
그는 그러한 불행을 모면하기 위하여 (42세나 되어 가지고) 17세의 젊은 아가씨 아네스와 결혼하려고 생각한다. 이 처녀는 옛날 어느 시골 여자인 어머니 한테서 사온것인데 ' 되도록 바보로 만들려고 ' 외따로 키워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순진함이 도리어 그의 뜻을 어기게 된다. 왜냐하면 아네스가 청년 오라스의 끈덕진 구애를 의심도 않고 받아들이게 때문이다. 오라스는 아르놀프가 아네스를 결혼상대로 마음먹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를 통사정 상대로 골라 그 여자와 모든 일이 잘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줄을 알면서도 아르놀프는 ' 순진한 처녀와 얼빠진 총각' 이 자기의 온갖 경계의 허를 찌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가 맛보는 실망은 아네스의 아버지가 때 마침 뜻밖에 아메리카에서 돌아와 딸을 넘겨 받다 청년 오라스에게 준다.
「아내의 학교」 는 몰리에르의 첫 번째의 본격적인 희극이다.
이 작품은 그 문학적 가치며 도덕적 가치에 관해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몰리에르는 「아내의 학교 비판」이라는 조그만 희곡속에서 그러한 논쟁에 대해서 응수했다.
이「비판」에서는 한 조그만 희곡 속에서 그러한 논쟁에 응수했다.
이「비판」에서는 한 후작과 한 현학자(리지다스), 그리고 정숙한 체하는 여자하나 (클리메느) 위라니의 살롱에서 몰리에르의 작품을 공격하는데 이에 대해서 위라니는 사촌누이 엘리즈와 그리고 특히 슈발리에 도랑트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옹호한다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타르튀프」 (1664 - 1669)
오르공에겐 다미스와 마리안느라는 두 아이가 있는데 젊은 엘미르와 재혼했다.
오르공과 그이 어머니 페르넬 부인과 타르튀프라는 인물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면 모두들 행복했을 것이다. 이 두 모자 타르튀프를 성인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미스, 마리안느, 엘미르, 클레앙트(엘미르의 남동생), 그리고 하녀인 도리느가 보기에는 위선자이고 그의 ' 신성모독적이고 사기꾼같은 찌푸린 상판대기 '는 진실한 독신자의 미덕과는 썩 거리가 멀었다.
그야 어쨌든 오르공은 발레르와 약혼하다시피 되어있는 딸 마리안느를 타르튀프에게 주려고 결심하고 있다.
엘미르는 타르튀프에게 이결혼을 단념시키려고 나섬으로써 타르튀프의 엉큼한과 오르공의 옹고집을 알아 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타르튀프는 단 둘이 마주 대하게 된 것을 이용하여 이 젊은 부인에게 알쏭달쏭한 말로 조심스럽게 넌지시 사랑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다미스가 뜻밖에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아버지에게 타르튀프의 그러한 협잡을 알렸지만 오르공은 아들의 말을 곧이 들지 않을뿐더러 그를 쫓아내고 타르튀프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증여한다. 타르튀프가 또 다시 그런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는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번에는 엘미르가 남편을 옆에 숨겨놓고 교묘하게 꼬리를 치는데에 그만 타르튀프가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
숨어 있던 오르공은 격분하여 불쑥 나타나 이 사기꾼을 쫓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타르튀프는 주인같은 말투로 응수한다. 증여받은 이상이 집은 자기 집일뿐만 아니라 오르공의 처지를 위태롭게 하는 정치적 문서를 전에 자기에게 맡겼는데 그것을 자기는 쥐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 우리가 협잡을 미워하시는 임금님 아래 살고 있지 않는다면 ' 오르공은 파멸하고 말았으리라. 타르튀프가 오르공을 체포케 하려고 데리러 간 포리는 이제까지 참을성 있게 타르튀프의 뒤를 밟아 오던 사람이었는데 이 타르튀프야 말로 사직 당국에서 찾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느닷없이 이 악당의 덜미를 잡는다. 왕은 과거의 충성을 생각하여 오르공을 용서한다. 마리안느는 당연히 발레르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몰리에르는 왕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르튀프」의 공연의 권리를 얻기 위해 5년간이나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몰리에르의 적들은 그가 거짓 믿음과 진짜 신앙을 같은 공격속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했으며 어느 광신적인 사제는 작자에 대해서 ' 지옥의 불에 앞서 우선 분형 (焚刑) '을 요구했다. 몰리에르는 어느 특정의 협회, 즉' 성체(聖體)협회 의 활동을 공격한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그 회원들은 개인의 생활을 정탐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 환 또는 돌의 잔치,1665」
돈 환은 갑자기 젊은 아내 도냐 엘비르를 버렸다.
그리고 하인 스가나렐을 데리고서 새로운 연애 모험을 찾아 떠났다. 스가나렐은 자기의 주인을 ' 이 세상에 있었던 최대의 악당 '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고약한 대감은 무서운 것 ' 이라고 생각하므로 감히 그에게서 떠나지 못한다. 엘비르의 남자 형제들이 그를 어느 숲속까지 쫓아 갔는데 거기서 그는 도둑놈들의 습격을 받은 그들중의 하나를 살려낸다.
돈환은 비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또 몇달전에 결투로 죽인 기사의 무덤에 찾아감으로써 용감함을 더 잘 보여준다. 그가 기사의 석상에게 장난으로 저녁밥을 먹으러 오라고 청하자 석상은 고개를 끄덕여 수락한다. 하지만 이 사나이의 냉혹하고 회의적인 마음을 움직일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가 아무리 간곡하게 타일러도 버릇없이 받아 넘기고 도냐 엘비르가 아무리 애원해도(자기는 이제 수녀가 되려고 하는데 당신도 제발 행실을 고쳐 달라고 한다.) 그는 이 젊은 여인의 검은 옷이 풍겨 주는 새로운 매력에만 마음이 끌릴뿐이다. 그리고 그는 기사의 석상이 나타나자 떨지도 않고 그를 맞아들인다. 게다가 한 술 어 떠서 기사의 집에 저녁식사를 하러 갈 것을 승낙한다.
그는 완전히 회개한 체하고서 또 다시 아버지를 속이고 이어서 엘비르의 오빠를 속이며 고소해한다. 갖가지 조짐이 그의 주위에 연달아 나타나지만 그의 교만한 마음을 꺾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사의 석상이 그이 앞에 나타나 그가 태연히 석상과 악수하자 석상은 불꽃이 솟아 오르는 구렁속으로 그를 끌고 들어간다.
「돈 환」은 당시 매우 유행하고 있었던 주제를 몰리에르가 다시 다룬 것이다.
그는 돈 환의 무서운 성격을 완화하여 전설적인 유혹자 대신, 베르사유에서 관찰한 것과
같은 그런 무신앙의 바람둥이 대귀족을 그려냈다.
그는 무신앙을 공격하였으나 「타르튀프」의 상연을 지칠줄 모르고 반대하는 신자들의 도당을 가라앉히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무신앙자로 하여금 신자들의 위선을 고발케 함으로써 불에 기름을 부었다.
「 인간 혐오자, 1666 」
알세스트는 사교계의 위선을 미워한다. 그는 친구인 필랭트와는 반대로 설령 그것이 사람들을 해치게 되더라도 어디까지나 솔직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는 셀리메느라는 젊은과부를 사랑한다. 이 여자가 교태를 부리고 남을 헐뜯기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에 따른다면 셀리메느의 사촌으로 그에게 애정을 품고 있는 진실한 엘리앙트를 사랑해야만 할것이지만 이성은 결코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 희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세시트의 마음을 찢는 고통스런 양자택일 속에서 전개된다. 즉, 셀리메느의 험구와 교태를 너그러이 봐 주느냐(이것은 그가 할수 없는 일이다.) 아니면 그 여자에게 그것을 비난하느냐( 그렇게 하면 그여자를 잃어 버릴 우려가 있다.) 왜냐하면 오롱트, 아카스트, 클리탕드르 등과 같은 젊은 후작들도 셀리메느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고 있는데 이들은 그 여자를 찬양함으로써 그 여자의 험구하기 좋아하는 성질을 북돋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모두를 셀리메느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 여자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로따로 보낸 편지를 서로 돌려 보았으므로 그 여자의 표리부동함이 모두의 눈에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모두를 인정없이 쏘아대고 그 여자에게서 떠나 버린다. 단 한 사람만이, 이도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 호되게 얻어맞았지만 ' 남아있다. 그것은 알세스트이다. 그는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하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자기 입장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 패하고 자기에 관해 끔직스런 중상을 받게 된 알세스트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견딜 수가 없게 되어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하려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셀리메느가 자기의 고독경으로 따라와 주기만 한다면...... 이 고독경이란 말을 듣고 이 젊은 사교계의 여자는 몸서리를 친다. 결혼이라면 좋다. 하지만 그런 귀양살이는 싫다는 것이다. 알세스트는 화가나서 그 여자와 손을 끊고 떠나 버린다. 엘리앙트는 필랭트와 결혼할 것이다.
완전히 내면적인「인간 혐오자」의 줄거리는 대중을 좀 실망시켰다.
반대로 식자들은 처음부터 이 희곡을 ' 흉내내기 어려운 걸작 '이라고 평가했다.
페틀롱과 장자크 루소는 이희곡이 유덕한 인간을 우롱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했다.
사실 우리는 알세스트이 생활 원칙을 비웃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 호감이 가게 하는 성실성에 대한 그의 정열을 비웃는 것도 아니라 그러한 원칙이 분명히 찬양을 받을 수 없는 사교계에서 그것을 강요하려고 하는 거의 고집불통을 비웃는 것이다.
「억지의사」(1666)
나무꾼 스가네렐의 아내는 난폭한 남편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주인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명의를 찾고 있는 제롱트의 두하인에게 자기 남편을 가리켜 그 분의 몽둥이로 후려치지 않으면 자기의 의술을 시인하지 않는 괴상한 의사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하니 과연 썩 좋은 성과가 나타났다. 억지 의사가 된 스가나렐은 환자인 뤼생드앞에 이끌려 간다. 그 여자는 레앙드르에 대한 연정이 반대에 부딪치자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스가나렐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우스꽝스런 짓을 다해 보이지만 그래도 제롱트와 주위 사람들의 눈을 잘 속여 간다. 그가 약제사로 분장한 레앙드르 뤼생드 앞으로 데리고 오자 처녀는 갑자기 말을 다시 하게 된다
스가나렐은 두 연인들을 도와서 달아나게 해준다. 이 때문에 그는 톡톡이 영금을 볼뻔하여 이제는 다 죽었구나 싶었을 때 레앙드르가 다시 나타난다.
레앙드르는 삼촌이 죽음으로써 자기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것을 방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예기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러한 소식만으로 뤼생드와의 결혼에 대해서 제롱트가 네세우고 있었던 모든 반대가 당장 사그라져 버린다.
이 소극은 몰리에르가 중세의 파블리오(fabliau)인 「농사꾼 의사」 (le Vilain Mire)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수전노」 (1668)
돈 많은 수전노 아르파공에게는 두 아이 엘리즈 라는 딸과 클레앙트라는 아들이 있는데 이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엘리즈는 한 청년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그 여자에 접근하기 위해 그 여자의 아버지 집에 발레르라는 이름 아래 집사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한편 클레앙트는 가난한 처녀 마리아느를 사랑하고 있는데 수전노인 아버지는 그가 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확실하다.
사실 아르파공은 아이들 제작기에 대해서 전혀 딴 계획을 품고있으며, 마리아느를 자기아내로 삼겠다는 의사를 그들에게 표명한다. 매파인 프로지느가 이 결혼에 중매를 맡고 나섰다. 처녀는 아르파공을 아직 만나 본일이 없었고, 그가 자기하고 결혼하고 싶어하는 금발청년의 아버지라는 것도 모르고있다. 아르파공의 괴상망칙한 얼굴을 보고 그 여자는 질겁을 한다. 그러나 클레앙트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힘을 얻는다. 두 젊은이가 이내 친근해 지는것을 보고 아르파공은 의심이 나서, 어찌된 사연인지 당장 알아 보려한다. 그는 자기에 나이를 생각하여 결혼을 단념한 체하면서, 클레앙트에게 마리아느와 결혼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다. 아들은 경솔하게도 함정에 빠진다. 그러나 이내 속았다는 것을 알고서, 아버지에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마리아느를 끝까지 양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갑자기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져서 수전노의 분노가 딴 데로 쏠린다
만 프랑을 넣어서 뜰에 파묻어 두었던 상자 하나를 도둑 맞은 것이다!! 훔쳐간 사람은 아르파공에게 쫓겨난 클레앙뜨의 하인 플레슈이다. 그러나 쟈크영감의 밀고로 혐의가 발레르에게 씌워진다. 자크 영감은 집안에 온갖 일을 다하는 하인인데, 집사에게 매를 맞은일이 있어 그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다. 누명을 벗기 위해, 발레르는 할수없이 자기에 진짜 이름을 밝힌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이냐! 마리아느는 그가 자기의 오빠임을 알아보고, 앙셀므 대감(아르파공이 엘리즈를 아내로 주려고 하고 있었던 50세의 사나이)은 그들 두 젊은이를 얼싸 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들에 아버지인 것이다.
옛날, 기구망칙한 일을 격은 끝에, 이 가족들은 난파를 당하여 뿔뿔이흩어졌던 것이다. ---- 이때 클레앙뜨가 나타나 아버지에게 흥정을 하기 시작한한다. 아르파공이 자기에게 마리아느를 준다면 그 돈 상자를 돌려 주게 하겠다는 것이다. 아르파공은 모든 것에 동의한다. 심지어 엘리즈를 발레르에게 주는 것 까자도. 다만 자기는 두 쌍의 결혼에 돈 한 푼 안 쓸 것이며 혼례식때 자기가 입을 옷을 한 벌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수전노」는 어떤 점에서 플라우투스에 「아울루라리아」[프랑스 어 Aulu-laire ou la Marmite, 즉 「남비의 희극」]의 모방이다. 그러나 플라우투스는 어쩌다가 보물을 발견한 사나이가 그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그렸다는데, 몰리에르는 타고난 구두쇠 근성을 그리고 있다.
「부르조아 귀족」(1670) ---- 나사 장수로 부자가 된 쥬르댕 씨는 사교계에 나가기를 꿈꾼다. 그가 예절을 배우기 위해서 고용한 선생들은 온갖 방법으로 그를 농락하고, 도랑트라는 이름에 몰락한 백작은 그로부터 마구 돈을 짜낸다. 도랑트는 쥬르댕 씨가 반한 도리멘느 후작 부인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사기꾼 귀족은 이 평민의 돈으로 자기 실속만 차리고 있는 것이다. 쥬르댕 부인은 남편의 미친 지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고, 도랑트에 대해서 전혀 호감을 갖지 않고 있다. 하녀인 니콜의 도움을 받아, 그 여자는 도랑트에 술책을 감시하고 그의 소행을 얀정 없이 꾸짖고, 자기 자신의 집에서 도리멘느가 자기 남편과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붙들어, 역시 호되게 야단 친다.
쥬르댕씨는 또 하나의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다. 딸 뤼씰을 적어도 어느 후작에게 시집보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뤼씰은 클레앙뜨라는 청년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는 귀족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슨 계략을 쓰지 않고서는 이 결혼을 성사시킬수 없다. 클레앙트의 하인인 꾀바른 꼬비엘이 계책 하나를 생각해 낸다. 그는 터키 사람으로 변장하여 쥬르댕씨에게, 빠리를 지나가던 터키 황태자가 그의 딸에 반하여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이 순진한 평민은 마마무쉬 라는 벼슬을 받고나서 기꺼이 뤼씰을 황태자 전하에게 바치는데, 이 전하란 사실은 변장한 클레앙트 이다.
「부르조아 귀족」은 국왕의 소망에 따라 씌어 졌다. 왕은 몰리에르에게 터키 풍속을 섞어 넣은 우스꽝스러운 막간극 하나를 쓰도록 분부했다. 그 전해 터키 사절단이 궁정 인들 무척 웃겨 주었기 때문이다. 몰리에르는 가장무도회에 성격희극과 풍속희극을 섞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벼락부자의 타입과 협작 귀족의 타입을 그려 냈다. 이러한 인물형은 18세기에 희곡속에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여학자님들」(1672) ----- 착한 브루조아인 크리잘의 집에서는 여자들이 모두 학문에 열중하고 있다. 그의 아내 필라맹트도, 누이동생 벨리즈도, 딸 아르망드도. 오직 둘째딸 앙리에뜨만이 자기를 사랑해주는 클리탕드르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싶다는 것밖에는 딴 야심이 없다. 불행하게도 클리탕드르는 필라맹드르의 마음에 드는 데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필라맹트의 마음에 드는데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느 여자가 ' 모든 것에 지식을 갖는 ' 데는 찬성하지만 현학 취미는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집에서 신처럼 여기고 있는 현학자 트리소탱에 대해서는 경멸밖에 품지 않고 있다. 그르므로 크리잘은 정말 자기 마음에 맞는 이 사위를 독재적인 아내 필라맹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안되리라 그런데 ' 그 여자는 성이 나면 무서운 사람" 이어서 그 여자 앞에서 그는 굴복하거나 꿀먹은 벙어리가 될 줄 밖에 모른다 필라맹트가 앙리에트를 트리소탱에게 주기로 결정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이 마음 약한 크리잘은 동생인 앙리스트의 지지와 앙리에트에 대한 애정에 힘을 얻어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자기의 뜻대로 강행하겠다고 늘 맹세하고 있다. 그러한 순간이 드디어 왔다. 필라맹트는 공증인을 불러오게 하여 그에게 트리소탱의 이름을 받아쓰게 한다 크리잘은 클리탕드르의 이름을 적게한다. '남편이 둘이라! '하고 궁증인은 외친다.
'관습상 너무 많은 걸.....' 하마터면 가압적인 필라맹트의 뜻대로 될 뻔했을 때 마침 아리스트가 아쁜 소식을 갖고 온다 소송에 지고 파산했기 때문에 크리잘은 알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트리소탱은 흉악한 심보를 드러내고 물러간다. 매우 다행스럽게도 이 나쁜소식을 아리스트의계략에 불과했으며 클리탕드르와 앙리에트이 결혼식은 모두가 기뻐하는 가운데 거행된다.
「여학자님들」은 13년 전에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이었던 여자들에게 새로운 조롱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여성들은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문학에서 철학과 과학쪽으로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신도 의사이고 아르강의 주치의 퓌르공씨의 조카이니 그렇게 하면 그는 집안에 '자기에게 필요한 온갖 약의 샘'을 갖게 되는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기의 아내이자 앙젤리크의 계모인 앙큼한 벨리느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바로 이딸의 상속권을 박탈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앙젤리크에게는 두 보호자가 있다. 삼폰 베랄드와 특히 괄괄하고 입이 사나운 하녀 트와네트가 그들이다 그들은 먼저 학교를 갓 나온 얼간이로서 현학적이고도 괴상망측한 토마 디아프와튀스와의 결혼을 깨고 앙젤리크가 사랑하는 클레앙트와의 결합을 도우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이엉뚱한 혼인의 중매장이인 퓌르공씨와 아르강의 사이를 갈라 놓음으로써 목적을 달성한다. ' 지나가던 의사'로 가장한 트와네트는 아르강에게 퓌르공씨는 엉터리 의사하고 말하고 자기가 책임지고 그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장담한다. 그런뒤 그들은 아르강에게 그의 아내가 그에게 애정을 보이는 것은 오직 돈 때문이라는 것을 거뜬히 증명한다.
즉 그가 잠시 죽은체 하고서 그의 '과부'가 얼마나 기쁜 듯이 그의 재산 증서를 그에게서 뺏아 가려고 드는가를 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똑같은 시험을 앙젤리크와 클레앙트에게도 해보니 그들은 진심으로 슬퍼한다.
아르강은 감격하여 그들의 결혼에 동의한다. 다만 클레앙트가 의사가 된다는 조건부로 '하지만 형님'하고 베랄드가 그에게 말한다. ' 그렇다면 형님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의사의 옷과 모자만 받으면 알아야 할 것은 뭐든지 대번에 아시게 될테니까요' 그리하여 ' 상상병 환자의 의삭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여흥이 시작된다.
이 유쾌한 희극에는 어딘지 씁쓸한 맛이 섞여 있다 몰리에르는 기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느끼면서, 자기의 병을 고쳐주지 못한 의사들에게 앙갚음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몰리에르 극에 있어서의 줄거리
- 그 종속적 역할
몰리에르가 줄거리를 세워 나갈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매우 부당하다 반대로 그는 아주 우스꽝스럽고 아주 뜻밖인 사건들 배합함으로써 우리의 호기심에 쉼쉴 겨를을 주지 않을 줄을( 그가 사귄 많은 이탈리아의 작가들처럼 ) 비상하게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재미있는 배합을 즐겨 하고 있는 것은 특히 소극에서이다. 그의 본격적인 희극에 있어서는 그가 웃음의 원천도 진실의 환각도 줄거리 속에 넣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극의 줄거리를 어디서고 고대 희극이나 이탈리아 희극의 진부한 낡은 테마에서 빌어 온다. 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줄거리는 모든 것이 성격속에 포함될 희극이 그 안에에서 전개될 틀에 불과하니까 그는 심지어 줄거리를 부숴 버리고 인물에게 자기 표현을 할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엄밀히 필요 불가결한 최소한도로 줄거리를 줄이는 경우조차도 있다. 「인간혐오자」는 거의 줄거리가 없는 생활의 자연스런 움직임이 되어 버린 그런 희곡의 한 예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필랭트에 대한 알세스트의 우정, 오롱트와 그의 분쟁, 셀리메느에 대한 그의 사랑, 이러한 숱한 사건들은 서로간에 거의 관련이 없고 알세스트의 인간 혐오벽을 갖가지 각도에서 밝혀 주는 것밖에는 다른 존재이유가 없다.
거기에는 결말도 없다. 알세스트는 여전히 셀리메느 앞에 있다 그는 마음만 내킨다면 다음 날 그 여자의 집에 돌아올수 있다. 이 나약한 애인이 토라진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또 희곡은 끝맷을 때도 몰리에르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타르튀프」와 「돈 환」은 두 개의 기적으로 끝나고 있다.
이 두 악당을 끝 장내기 위해서는
후자에세는 하느님이 전자에서는 임금이 개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학자님들」을 끝내 주는 것은 한 통의 위조 편지이고 「수전노」를 끝내 주는 것은 연달아 밝혀지는 친족 관계이다. 이러한 결말은 그것이 성격이나 정열과 직접 모순되어 더욱더 의논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 드라마의 자연스런 발전과 논리적인 효과를 대번에 부숴버린다.
그 때문에 이러한 결말은 전혀 상투적이지만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다소의 기교를 부리지 않고서 어떻게 저 이기주의 투쟁을 즐겁게 끝낼 수가 있겠는가?
그러한 투쟁은 등장 인물의 근본에 기인하고 있으므로 제 5 막의 짧은 시간안에서도 진정으로 사라질 수 없을 것이 아닌가? 어쩌면 몰리에르도 그러한 결말을 보다 덜 갑작스럽게 만들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 결말의 준비에 장소와 시간을 주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인데 몰리에르는 이러한 장소와 시간을 성격의 전개에 바치기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성격묘사
- 몰리에르 희극의 본래와 목적
성격묘사, 이것이야 말고 몰리에르의 본래의 목적이다. 그것은 그의 현실주의의 원리 그 자체이며 이 현실주의의 무엇보다도 먼저 심리적 현실주의이다. 인간 영혼의 뒷면, 동기, 원동력, 이러한 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라나 그는 너무나도 강렬한 삶의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18세기의 작가들이 한 것과 같은 그런 순수한 추상(위선자 그 자체, 현학자 그자체, 등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가 창조하는 인물들은 그 시대의 사회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살아 있는 인간의 평범한 복잡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사회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예컨대 「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은 프레시외즈들 살롱이고 「여학자님들」은 학자들의 살롱이고, 「타르튀프」는 거짓 독신자에 의한 부르즈와 가정의 해체이고 「돈 환」은 당시 귀족들에게서 그렇게도 자주 볼수 있었던 무신앙에 대한 풍자이고, 등등....... 또 그의 인물들은 복잡하다. 인간혐오자가 아양떠는 여자를 사랑하고 위선자 타르튀프가 욕망의 격렬함으로 인해 정체가 드러나고 수전노가 사랑에 빠지고 돈 환이 하도 다양성을 지니고 있어서 언제까지나 신비롭고 사람에게 불안을 준다.
이러한 복잡성이 등장 인물들 하나 하나에 강렬한 개인적 삶을 부여한다.
그러나 여기에 천재적 솜씨가 있거니와 그렇게도 뚜렷한 개성을 갖고 있는 이 17세기의 특이한 인물들은 동시에 영원한 인간형이다. 이들 부르즈와나 귀족들은 허영심 많고 교만하고, 어리석고, 노련하고, 악랄하고, 이기주의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마음이 곧고 생각이 견실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몰리에르의 희곡은 사라진 사회의 환기라고도 생각할수 있고 또 때로는 시대도 역사적 존재도 없는 성격 묘사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아마 단 하나의 희곡만이 예외가 될지 모른다. 그것은 「수전노」인데 아르파공은 정녕 수전노 그 자체이며 17세기의 고리 대금업자는 세밀하게 조사해 본 뒤에야 비로서 나타난다.
몰리에르는 악덕이 그 인간 속에서 끼치는 침해를 연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그 인간의 밖에서도 그 악덕에서 기인하는 자연적인 감정의 변질 또는 파괴를 관찰한다. 악덕에 의한 악덕의 발생은「수전노」속에서 뚜렷이 보인다. 아르파공의 인색함은 그 자신 속에서 명예심, 위엄에 대한 배려, 의무의 관념, 그리고 아버지의 애정까지도 죽이지만 그의 아이들속에서도 그것이 존경과 자식의 애정을 죽인다. 가정은 파괴된다 이 아버지와 이 아이들은 서로 남과 같이, 원수처럼, 그것도 서로 존경하지 않는 원수처럼 맞서 있다
이렇게 최초의 악의 결과를 따라가다 보면 희극은 이내 우울해질지 모른다
몰리에르는 항상 인물의 성격 위에 충분한 조명을 비추도록 배려한다.
이 성격이란 재미있는 것이니가 그러나 아주 사소한 결점에서도 얼마나 중대한 결과가 빚어지는가를 언제나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희극에 더할 수 없는 넓은 폭과 큰 효과를 주고 있는 것이다.
몰리에르가 자연을 왜곡하고 성격을 과장했다고 비난한 사람들도 있었다.(브왈로, 라 브뤼에르, 페늘롱) 몰리에르가 지배적인 결점을 강력하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 그것을 단순화 하고
확대해야만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돈은 아르파공의 유일한 목적이고 주르댕 씨의 순진하나 허영심은 한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화나 확대는 결코 변형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을 부각시켜 주는 것이며 진실을 뚜렷이 나타내기 위해서나 희극미를 잘 드러내 주기 위해서 연극에 필요한 것이다. 라 부뤼에르의 오뉘프르는 타르튀프보다도 더 면밀하게 연구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이 복합적인 인물은 거의 살아 있지 않은데 타르튀프는 살아 있다.
몰리에르 극의 인물
- 그 다양성
몰리에르는 그러므로 우리에게 17세기 프랑스의 한 폭의 커다란 그림을 제공하고 있는 셈인데 그것은 색채와 생명이 넘쳐 흐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도 역시 거기에 그려져 있는 풍속은 영원한 커다란 정열의 일시적 형태에 불과한 것 같이 보인다.
그리하여 사회적 풍자는 항상 도덕적 풍자와 겹쳐져 있으며 그 거꾸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골 사람은 잠간씩 밖에 보이지 않는데 순박하고도 교활하여 이기적이고 사악한 본성을 순진함으로 가리고 있고 시골여자는 아양스럽고 허영심 많고 그 때문에 쉽사리 농락에 넘어간다. 스가나렐은 주정뱅이이고, 난폭하고, 욕심 많은 시골 사람이다
시골뜨기나 가마꾼의 몇몇 실루엣을 통하여 잠깐씩 볼 수 있다. 협잡꾼, 뚜장이 계집, 검객들의 수상쩍은 세계도 짐작이 간다.
뻔뻔스럽고 교활한 하인들은 바로 그런 세계에서 나오고 그런 세계와 결부되어 있다 정직한 서민, 태도는 거칠고 말씨는 상스러워도, 아주 성실하고 착한 서민은 하녀들에 의해서 대표되고 있다.
부르즈와는 그 종류가 그러하듯이 수도 많고 다양하다. 상인인 디망슈[돈 환에 의해 내쫓긴 상인]는 귀족들 덕택으로 빚쟁이가 되지만 돈은 돌려 받지 못하고 놀림감만 된다.
주르댕 부인은 그 분별력과 격해지기 쉬운 성미와 시끄러운 잔소리와 끝없는 선량함에 의해서 서민에 아주 가깝다. 얼간이 부르즈와인 크리잘은 둔하고 물질적이고 먹을 것에 만 마음을 쓰고 아버지나 남편으로서 위엄도 없고 권위도 없다.
주르댕과 아르놀프는 귀족 노릇을 하고 소유지의 이름으로 성을 삼고 많은 돈을 써가면서 귀족과 사귀는 허영심 많은 부르즈와다.
마들롱, 카토스, 아르망드, 팔라맹트 등은 부르즈와 집안의 여자인 주제에 프레시외즈인 체하고 재치를 부린다. 오르공과 그가족은 상류 부르즈와이거나 법관 귀족으로서, 세련되고, 유복한, 벌써 사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 시골 귀족을 보자
「조르즈 당댕」(George Dandin)에 등장하는 소탕빌부부는 성씨(姓氏)와 가문을 코에 걸고 뻣뻣하고 점잖 빼고 지체 없는 자라면 누구 앞에서나 교만하게 군다.
시골 멋쟁이인 그들의 딸 앙젤리크는 악녀에 불과하다. 데스카르바냐스 후작부인은 고상한 체하고 궁정과 빠리사람들을 괴상망측하게 흉내낸다. 끝으로 빠리와 궁정의 귀족을 보면 몰락한 귀족 도랑트는 사기꾼이 우스꽝스런 미남 멋쟁이들이며 한량들도 있는가 하면 오롱트는 대귀족인 주제에 시를 짓고 아르시노에는 엉큼한 숙녀이고 셀리메느는 매정하고도 매혹적인 멋쟁이다.
클리탕드르, 알세스트, 필랭트, 엘리아트등은 참으로 교양있는 신사 숙녀들이다. 금융업자는 잠깐 나타날 뿐이다. 그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두가지 인물형, 사제와 국왕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당연하다.
몰리에르의 희극미
몰리에르는 진실을 그려 내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희극적인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관찰이 너무 신랄해지면, 그래도 웃음을 자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한 희극적 요소를 섞거나 관찰된 결점이 다소라도 희극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으면 그것이 누구의 눈에도 뜨이도록 그것을 확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두 가지 의도가 그의 희극 도처에서 눈에 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언제나 유쾌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탐구하는 결점이며 악덕이며 정열은 개인을 괴롭히고 가정을 파괴한다.
아르놀프나 알세스트는 몹시 불행하다. 트리소탱, 벨리느, 타르튀프등의 위선은 집안의 평화와 행운을 깨뜨린다. 같은 인물형과 같은 주제를 가지고 발자크는 사람을 떨게 할 것이다 몰리에르는 웃긴다 영혼과 인생의 이 서글픈 뒷면의 어디가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지 찾아보는 것은 그는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 돈 환」, 「인간 혐오자」, 「타르튀프」, 「상상병 환자」등에 있어 희극은 한때 이 장르의 한계에 부딪치고 한계를 뛰어넘기까지 한다. 거기에서 부드러운 또는 고통스러운 감동이 생겨난다. 그러나 몰리에르는 이내 그러한 감동을 억누르고 희극 속으로 돌아간다
그가 어떠한 수법으로 항상 희극적인 인상을 돋보이게 하는지 연구해 볼 만하다. 스가나렐은 「돈 환」의 침울한 삽화(揷話)를 즐겁게 해 주는 구실을 하고 뒤 브와는「인간 혐오자」제 4막의 비통한 고민을 지워 주고, 도리느는 「타르튀프」의 한심스런 장면에 유쾌한 기분을 던져주고 있으며 아르강은 우리가 벨리느에 대해서 느끼는 반감을 누그러뜨리거나 앙젤리크에 대해서 측은한 동정을 느끼게 해준다.
현실이 덜 우스우면 그럴수록 더 몰리에르는 그것을 소극으로서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몰리에르의 희극미가 씁쓸한 경험의 바탕 위에서 얻어지고 그 의에 달라붙은 희극미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리라 몰리에르의 승리는 도리어 각각의 인간형 속에 각각의 상황속에 우스꽝스러운 것을 자연스럽게 표착하여 그것을 돋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그의 유쾌함은 솔직하고 견실하고 진실하다. 몰리에르 극의 익살의 성질에 관해서는 아무리 역설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것은 결코 문학적인 것도 아니고 결코 재담도 아니다. 마리보나 보마르셰는 몰리에르보다도 훨씬 더 재치가 있다. 몰리에르의 익살은 그 성질은 다르지만 코르네유의 숭고함과 비슷하다. 그것은 단번에 그 밑바닥에서 드러나는 성격으로부터 강력하게 솟아오르는 것이다.
(오르공의 ' 가련한 놈 같으니! ' 등등......) 몰리에르는「아내의 학교」속의 한 마디의 말을 변명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이 때 그는 그의 익살을 훌륭히 정의한 셈이다.
'작자는 이 말을 그 자체 멋진 말이라고 해서 쓴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사람(즉 등장인물)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 희극적인 어조를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 있는 저 말의 반복이며 중단이며 평행적인 발전은 잘 생각해보면 일상적인 회화, 진행의 재생에 불과한 것이다 일상적인 회화에 있어서는 두 고집쟁이가 맞서서 제각기 자기를 향해 혼잣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주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몰리에르의 익살은 결코 우스꽝스런 익살 속에 사라져 버리지 않고 언제나 현실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다.
희극미 없는 진실은 없지만 진실이 없는 희극미도 없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몰리에르의 공식 그 자체인 것이다.
몰리에르의 도덕
이러한 사회적 또는 도덕적 풍자로부터 일관성 있는 도덕을 끌어 낼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도덕이요 몰리에르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독교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도덕이다. 그는 「타르튀프」속에서, 참다운 신앙을 정의해 보려고 람으로써 그것을 증명했다.(제1막 제5장)
그는 또 자연에의 저항, 자기의 포기, 이상을 향한 고통스런 노력 등과 같은 기독교도덕의 근본적 형식을 자기 작품에서 배제함으로써 그것을 더 잘 증명하고 있다.
그는 본능의 정당함을 믿는다. 라블레와 몽테뉴의 상속자인 그는 자연은 선할 뿐만 아니라 전능하다고 생각한다 본능을 따르지 않으면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본능과 싸운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왜냐하면 본능이 언제나 이기니까. 그러므로 사람은 본능과 싸움으로써 불행해지고 우스꽝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몰리에르는 사랑의 자연 법칙을 따르는 젊은이들의 편을 들고 그들을 방해하는 아버지들과 그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능에도 한계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능은 원래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것이다 결국, 인색은 아르파공의 본능이고 위선은 타르튀프의 본능이다 라블레타 몽테뉴와같이 몰리에르도 본능을 이성에 의해서 통제한다.
이성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타산없는 이기주의를 시인하고 아르파공이나 타르튀프의 타산적인 이기주의를 비난한다. 이성은 각자가 자기와 비슷한 남의 권리도 존종한다는 조건 아래 자기의 천성을 충분히 발전시키는 권리를 모든 개인에게 부여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을 말살할 정도로까지 권리를 모든 개인에게 부여한다.
그러므로 한 인간을 말살할 정도로까지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것을 허용되지 않는다. 이 점에 아르놀프의 잘못이 있다. 이 사나이는 전혀 이기적인 소견에서 아네스를 무지몽매하게 키우고 모든 자연적인 쾌락을 박탈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네스의 본성이 이에 반발하여 이 어리석은 소녀는 본능에 따라서 자기의 행복을 향해 힘차게 똑바로 달려간다. 그리고 몰리에르는 그것을 시인한다.
마찬가지로 그는 아이들이 자기힘으로 자기를 위해서 살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자기 아이들을 자기 자신의 생각과 욕구의 이기적 만족을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면 이런 아버지들을 사정없이 공격한다. 아버지의 권위는17세기에 있어서는 지극히 엄격했다.
몰리에르는 그것을 비웃고 부순다. 그는 애정과 관용으로 가득 찬 아버지의 권위를 꿈꾸고 이 권위가 자애로움을 가지고 아이를 인도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완전히 꽃필 수 있게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본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든 도덕은 해방된 본능들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충돌을 자아낼 우려가 있다. 이러한 충돌을 회피 또는 완화하기 위해서 몰리에르는 동정, 친절, 관용등과 같은 사회적 미덕을 찬양한다.
그가 칭찬하는 미덕은 오직 그것뿐이라고 까지도 할 수 있다. 개인은 그의 행위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한, 자기 좋을 대로 행동해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몰리에르가 그 결과에는 관계없이 그 자체를 위해서 실행할 것을 권하는 개인적 미덕 하나가, 꼭 하나만의 미덕이 있다.
그것은 진실의 절대적 존중이다. 그렇지만 그의 일상적인 총명은 절대적인 솔직은 세상은 살아 가는 데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는 것을 그에게 가리켜 주었다.
「인간 혐오자」가 풍기는 씁쓸한 뒷맛은 바로 거기서 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의 매우 주목할 만한 특징은, 「인간 혐오자」는 제외하고서 그것이 지극히 부르즈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유랑생활을 한 이 희극 배우, 평생 여러 가지 이유로 저 수상쩍은 베자르 집안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결혼을 잘못하여 결혼 생활에서 맛본 것이라고는 귀찮은 일밖에 없었던 이 희극 배우는 시민적인 행복이라거나 착실하고 평온한 가정생활등과 같은 이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언제나 가정의 행복이며 가정 생활의 조건과 관계되는 주제를 고르는 것이다. 결혼과 처녀들의 교육, 그는 늘 이 두가지 점으로 되돌아 오곤 했다
결혼에 있어 그는 네 가지 합당성을 요구한다. 첫째 신분이 비슷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사회적인 필연이다. 농부인 조르즈 당댕은 ' 양반댁 규수'와 결혼했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다음에 기질이 비슷해야 한다.
현학적인 트리소탱은 순박한 앙리에트와 결혼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 도 나이가비슷해야 한다 자연은 젊은 사나이가 젊은 처녀와 결혼하도록 운명지워 놓고 있다 아르파공이 자기의 아들과 한 처녀를 놓고 다툰다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다.
끝으로 네 번째의 합당성은 서로 사랑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합당성을 대신 할 수 있는 최고의 합당성이다.
둘째 점은 처녀들의 교육이다 몰리에르가 바라는 것은 이자벨처럼 수도원에 갇혀 있는 엉큼한 처녀도 아니고 아테스처럼 무지몽매한 처녀도 아니고 마그들롱처럼 재치를 부리고 머리가 돈 처녀도 아니고 아르망드처럼 현학적이고 무미건조한 처녀도 아니라, 인생을 알고, 이성적이고, 균형이 잡히고, 명석한 두뇌와 곧은 의지와 정숙한 마음을 가진 처녀,「여학자님들」의 앙리에트와 같은 처녀이다.
보다시피, 몰리에르의 도덕은 아주 실제적이다 그것은 철두철미 실제적이다 그것은 숭고하지도, 엄격하지도, 기독교적인것도, 스토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사회의 복지라는 매우 접근하기 쉬운 이상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서로 도우면서 행복하게 되려고 노력하는 신사 숙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몰리에르의 언어와 문체
사람들은 몰리에르에 대해서 '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옳지 않은 표현 ' (라 브뤼예르), '뜻 모를 말' (폐늘롱), '이상하고 부적절한 표현' (보브나르그)을 쓰고 있다고 비난한다.
아마 몰리에르는 숱한 걱정에 쫓긴 사람으로서 속필이었을 것이고 즉흥적인 정열에 빠져 소홀했던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라. 그러나 역시 그가 훌륭한 작가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에 대한 비난은 무엇인가? 그것은 특히 프레시외들과 아카데미가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신사 숙녀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서민층 가까이서 태어나 12년간 빠리를 떠나 있었던 몰리에르는 학술적인 규칙과 상류 사회의 관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내용이 풍부하고 구수한 말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강렬하고 다채롭고 거친 언어는 무대에서는 지극히 효과적인 것이며.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표현은 그만큼 쉽게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의 문장 구성법이 '유기적이지 못하다' 고 단언했다. 그들이 불평한 것은 반복되고 병치되고 늘 et[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되어 있다는 문장들이다 그런데 그것은 회화의 성질 그 자체이자 일반적 어조인 것이다.
이러한 비평가들은 읽었을 때 길고 얽혀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문장들이 관객이 듣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았다.
무대에서는 이 문장들이 저절로 유기적 구조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눈으로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귀로 듣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몰리에르의 문체는 훌륭한 무대용의 문체이다. 그것은 힘차고, 정확하고, 말하는 인물에 언제나 알맞은 것이다. 연극적 합당성만이 물리에르의 눈에 가치 있게 보이는 규칙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 규칙을 지켜 필요한 경우에는 그가 알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저 살롱이나 궁정의 말을 정확히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프레시외들이 조신들의 입으로만 말하게 한다. 그 모방이 하도 충실하므로 그들의 말 속에서 아무리 작자의 흔적을 찾아 보아도 소용이 없다 아무도 견줄 수 없었던 이러한 문체의 다양성이야말로 확실히 극적 표현의 승리이다.
G. 랑송/P.튀프로 공저, 정교수 역, 랑송불문학사 상권, 을서문화사, 1991
◎ 9. 프랑스 고전주의
몰리에르
프랑스의 비극이 라신느로 완숙의 경지에 달했다면, 프랑스의 희극은 몰리에르로 그 정상에 올랐다. 본명이 장-밥티스트 뽀끌랭(Jean-Baptiste Poquelin)이었던 몰리에르(Moliere, 1622-1673)는 파리의 부유한 가구상의 아들로서 1643년 연극에 입문하기 전까지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그의 첫 번째 사업이었던 떼아트르 일뤼스트르(Theatre Illustre)가 실패하자 몰리에르와 그의 일행은 1646년부터 1658년까지 프랑스의 지방을 순회하였다. 이 동안에 이 집단은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그들이 파리로 돌아왔을 때는 금새 오텔 드 부르곤뉴 다음가는 제2의 극단이 되었고 희극에서는 오히려 앞섰다. 몰리에르는 루이 14세(Louis XIV)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로부터 리슐리외가 지은 빨레-르와얄 극장의 사용허가를 얻는 한편 많은 논쟁에서 그의 보호를 받았다.
오늘날 몰리에르는 주로 성격희극 및 사상희극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다른 종류의 희곡도 아울러 썼다. 코메디아 델 아테의 영향을 크게 받아, 많은 그의 희곡들이 코메디아의 등장인물 유형을 내세운 소극(笑劇)들이다. 그는 또한 궁정을 위해 여러 편의 코메디 발레(comedy ballet: 춤이 있는 희극적 희곡)를 썼고 비극에도 손을 대보았다. 그는 그의 경력 전체에 걸쳐서 적당하다고 생각되면 플라우터스, 테렌스, 코메디아, 그리고 스페인과 이태리의 원천들로부터 차용했다. 몰리에르의 작품은 동시대 비극작가들의 작품보다 더 보편적인 호소력을 견지해 왔다. 코르네이유와 라신느의 작품이 프랑스 밖에서는 거의 상연되고 있지 않은 데 반해서 그의 희곡들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아직도 무대 위에 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몰리에르의 유명한 작품들로는 『부인학교』(The School for Wives, 1662),『따르뛰프』(Tartuffe, 1664),『수전노』(The Miser, 1668),『마음이 내키지 않는 의사』(The Doctor in Spite of Himself, 1666),『염세가』(The Misanthrope, 1666), 『예비신사』(The Would-Be Gentleman) 및 『기분으로 앓는 사나이』(The Imaginary Invalid, 1673) 등이 있다. 그의 희곡의 한 예로 여기서는 『따르뛰프』를 상론해 보겠다.
『따르뛰프』
『위선자 따르뛰프』는 1664년에는 3막극으로, 1667년에는 다른 형태로, 그리고 1669년에는 현재의 5막극으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완성된 후 거의 끊임없이 공연목록에 속해 왔고 몰리에르의 다른 어떤 희곡보다도 자주 공연되어 왔다.
주제와 사상. 『따르뛰프』는 분명히 종교적 위선을 다루고 있다. 당시의 상황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겠지만 작품을 규명해 주는 역사적 사건을 돌아보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몰리에르가 풍자하고자 했던 가장 확실한 표적은 아마 성례단(聖禮團)이라 하여 1627년에 설립된 비밀결사로서 1660년까지 프랑스 전역에 영향을 미쳤던 단체였을 것이다. 이 단체의 목적에는 이교(異敎)의 탄압, 자선 및 선교사업의 촉진, 그리고 도덕률의 개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마지막 목표를 추구하면서 이 단체는 '성령의 경찰'을 두어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정탐하게 하였다. 어느 평론가가 이 집단에 대해 말한 바처럼, "소박한 민중들 같으면 추악한 행동이라 부를 것들을 자신들의 의도의 순수성을 내세워 신성화하면서 아무 것도 주저하지 않았던 광신도들이 이 단체의 첩자들이었다."
몰리에르는 1644년 『따르뛰프』가 초연되기 전에 여러 사람들에게 작품을 읽어 주었는데 이 성례단이 곧바로 그에 대해 집요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논쟁이 매우 격해지자 급기야 루이 14세가 더 이상의 공연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몰리에르는 1667년에 반대를 다소나마 누그러뜨리기 위해 작품을 수정하였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다른 수정본이 제시되었던 1669년까지는 반대가 대부분 사라졌었다.
몰리에르가 이 단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느냐 하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위선자들이 번성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주는 이 성례단과 같은 단체들을 그가 생각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몰리에르는 작품의 결말을 통해서 이런 위선자들이 없어질 때 프랑스가 더욱 번영하리라는 것과, 왕이 그들의 도움 없이도 진실과 허위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모든 몰리에르의 작품에서처럼, 인생에 대한 균형잡힌 견해가 『따르뛰프』에서도 견지된다. 몰리에르에게 있어서 경건은 쾌락의 포기를 강요하지 않고 그것의 올바른 활용을 요구한다. 진정으로 신앙깊은 자는 경건한 언사보다는 스스로 좋은 본을 보이는 행동을 통해서 세상을 개혁하려 한다. 다시 말해서 작품의 어느 대사에서처럼 "그들은 천당 자체보다도 더 뜨거운 열심으로 천당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다."
몰리에르가 즐겨 다루었던 또 하나의 토픽은 강제결혼이다. 부분적으로 이 주제는 과거의 연극, 특히 로마 희극과 코메디아 델 아테로부터 물려받은 관습인데, 거기서는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를 따짐이 없이 강제로 자식들의 결혼을 성사시키려는 아버지들의 기도를 중심으로 플롯이 전개되기 일쑤였다. 몰리에르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대부부의 결혼악들은 강요된 결합에서 연원한다고 주장한다.『따르뛰프』에서도 그는 그러한 결혼이 간통을 나기 쉽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결혼은 완전히 부차적인 문제다. 본 주제는 위선이다.
플롯, 구조 및 성격창조.『따르뛰프』의 플롯은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오르공(Orgon)을 완전히 장악한 따르뛰프를 보여 준다. 따르뛰프의 가면을 벗긴다. 따르뛰프가 복수를 시도하다. 따르뛰프의 계획을 좌절시킨다. 끝으로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중요한 변전이 세 차례 있다. 첫번째(따르뛰프의 정체 탄로)는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진정한 상황을 알도록 해분다. 그러나 그 결과로 생기는 행복은 금새 사라진다. 오르공이 따르뛰프의 덫에 완전히 걸린 것이다. 오르공의 얇은 귀가 그를 이런 처지에 빠뜨렸으므로 그는 벌받아 마땅하겠으나 죄 없는 식구들이 함께 연루되어 있다.
처음의 두 변전(따르뛰프에 대한 역습, 오르공에 대한 따르뛰프의 역습)은 사려깊게 예시되었으나 마지막 것과 작품의 해결은 그렇지 않다. 억지스러운 종결(따르뛰프가 느닷없이 악명높은 범죄자임이 밝혀진다)이 비난의 주요 대상이 되어 왔다. 정의가 승리하고 정상(正常)이 회복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감정상으로는 만족스러운 종결이지만, 훌륭한 극구성이라는 기존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이 억지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지체된 따르뛰프의 등장 때문에도 몰리에르가 비난을 받았다. 그는 3막에 가서야 등장한다. 그러나 이 지연이 우연은 아니었다. 몰리에르는 직접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처음의 두 막을 온통 나의 악당의 등장을 위해 준비하는 데 사용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방청인을 농락하지 않는다. 관객은 처음부터 그에게 부여한 특징들을 안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악당의 성격을 관객에게 그려 주지 않을 것이며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몰리에르가 따르뛰프의 성격에 대한 일체의 혼동을 막으려 했다는 것은 1막에 상식적인 등장인물인 끌레앙뜨(Cleante, 몰리에르의 관점을 가장 가까이 대변하는 인물)의 긴 사설을 삽입한 것으로도 확인된다. 이 사설에 참다운 신앙과 거짓이 구별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몰리에르 희곡에는 이와 비슷한 토론이 들어 있지만, 대체로 그것은 종반부에 나온다. 이 주장을 『따르뛰프』에서는 막에 삽입했다는 것이 관객에게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하는 몰리에르의 의도를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따르뛰프』의 구조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용도 검토를 통해서도 확연해진다. 모든 막(무대상의 행동 면에서)에서 중요한 인물은 오로지 오르공 한 역뿐이다. 끌레앙뜨는 그의 주된 기능-상식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1막에서 나타난다. 그는 4막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4막과 5막에서 그는 그가 1막에서 발설했던 사상들을 단순히 재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작품 속에서 그의 존재는 행동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다만 주제를 강조할 따름이다.
몸종 오린느(orine)는 각 막에 두루 등장하지만 그녀의 역은 사실상 3막이 시작된 직후에 종료된다. 물론 그 시점까지는 그녀가 주요 등장인물이기는 하다. 그녀의 솔직함과 개방성은 오르공의 경솔함, 연인들의 변덕, 따르뛰프의 거짓 신앙 등을 보여 주기 위한 거울로서 쓰인다. 그녀의 지혜와 상식으로 그녀는 저 과장된 행동을 적당한 원근 속에 집어넣어 준다. 따르뛰프가 등장한 뒤에는 그녀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따르뛰프마저도 준비를 위한 두 막 뒤에 마침내 등장할 때 기이한 처리를 당한다. 그는 지금까지 쓰여진 것 중 가장 유명한 등장대사 중의 하나를 갖고 있다. "로랑, 내 고행복과 채찍을 치우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너를 깨우쳐 주시도록 기도해라. 누가 나를 보자고 하면 사람들이 내게 준 연보(捐補)돈을 죄수들에게 나누어주러 갔다고 말해." 그러나 그의 역의 주요 부분은 엘미르(Elmire)와의 두 '사랑장면'이다. 몰리에르는 아마 일찍이 다른 등장인물들에 의해 그려진 따르뛰프의 그림을 관객이 당연히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한 것 같고 따라서 작품은 그의 위선의 한 측면마을 보여 주면 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도린느에 대한 따르뛰프의 처음 대사(자기 내부에서 악한 생각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녀의 가슴을 손수건으로 가리라고 하는 대사)는 그의 음탕한 성격을 노출시켜 주며 무대 위에서 강조되는 것도 바로 이 성질이다.
따르뛰프는 다미스(Damis)가 그를 탄핵할 때 그의 성격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을 보인다. 그는 자신을 방어하는 대신 비난을 겸손하게, 믿음 깊은 사람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 장면이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오르공이 어떻게 그토록 철저하게 속게 되었는가를 잘 설명해 준다.
5막은 지금까지 위선으로 가려져 왔던 따르뛰프의 참 성격을 보여 주지만 또 한편 관객이 따르뛰프에 대해 아는 바는 대부분 그가 무대 위에서 실제로 해 보이는 행동보다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그에 대해 말하는 바를 통해서 얻은 것임도 사실이다.
연인들인 발레르(Valere)와 마리안느(Mariane)는 2막에 등장하며, 그 후부터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단지 오르공이 얼마나 따르뛰프에게 영향받았는지를 보여 주는 데 기여할 뿐이다. 왜냐하면 오르공이 그의 딸 마리안느를 따르뛰프에게 결혼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연인들의 언쟁은 재미를 제공하고 있으나 나머지 극과는 무관하다. 코메디아에서처럼 연인들은 선남선녀이고 올바르며 서로의 사랑을 받을 만큼 존경스러운 젊은이들이지만, 멍청하고 괴팍한 부모로 인해서 피차 접근을 못하고 있다.
엘미르 역시 필요할 때 쓰임받고 다른 때는 무시된다. 그녀는 3막(따르뛰프가 그녀를 유혹하는)에서 등장하는데, 대사라야 고작 한둘밖에 안 되며 그것은 대부분 따르뛰프의 제안을 경박하게 대하는 내용이다. 그녀의 큰 대사는 4막에 있는데 여기서 그녀는 따르뛰프의 가면을 벗기는 도구로서 역할한다. 이처럼 역이 고르게 배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그녀의 본성에 대해서 혼동이 야기된다. 그래서 일부 평론가들은 그녀의 도덕성을 의문시했다. 그러나 몰리에르가 적당히 세속적이면서도 정숙한 여인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작품 전체에 가장 고르게 배급되어 있는 역은 오르공이다. 세상에서 따르뛰프같은 인물들은 위험한 존재이겠지만 그들은 오르공 같은 반편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사악한 자들의 번영은 어리석은 자들의 얇은 귀에 의존하는 것이다. 몰리에르는 따르뛰프의 계산된 경건을 강조하는 만큼 오르공의 충동성과 완고함을 강조한다. 오르공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상당한 재산을 가진 부유한 상인이다. 그는 한 가지 질물을 다각도로 심사숙고하지 못하도 행동하기 때문에 따르뛰프를 오판한다. 마침내 따르뛰프의 정체가 탄로될 때 오르공의 성격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는 아직도 위선과 경건의 차이를 보지 못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성인군자라면 이젠 딱 질색이야. 이제부터는 지독한 경멸로 그들을 보겠고 악마보다도 더 나쁜 자들로 취급할 테야." 이렇게 그는 중립적인 위치로 돌아가는 대신 반대방향이긴 하지만 똑같이 과장된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의 나이와 신체적 외모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이 없다. 몰리에르는 그의 극단을 염두에 두고 극을 썼고 또 직접 연출했으므로 대본에다 모든 세부사항들을 명시할 필요가 없었다. 따르뛰프 역은 불그레한 혈색의 거한 뒤크르와지(Ducroisy)를 위해 쓰여졌다. 이 사실 역시 분명히 익살의 여러 원천 중의 하나였다. 고행복, 채찍, 단식 등에 대한 따르뛰프의 모든 언사는 그의 뚱뚱한 몸집, 불그레한 건강미, 음탕한 성격 등과 상치된다. 오르공 역은 몰리에르가 맡았는데 그의 표정연기와 몸짓연기는 당시 이름나 있었다. 엘미르는 몰리에르의 아내가 연기했는데 그녀는 1669년 당시 27세였다. 뻬르넬르(Pernall) 부인 역은 남자가 했기 때문에, 따르뛰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과장된 비탄과 쾌락의 부정은 틀림없이 우스꽝스럽게 처리되었을 것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중산층 또는 하층(신고전주의의 희극이론에 맞추어)에서 취했다.
배우들에게 가장 따분한 역은 아마 끌레앙뜨와 연인들의 역일 것이다. 관객들의 동정을 사게 창조되어 있으나 그들은 마치 마분지로 만든 인물 같다. 따르뛰프 역은 어렵고 이 역을 연기하는 배우는 너무 악당처럼 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위협이 너무 크면 희극이 끊기기 때문이다. 아마도 연기하는 데는 오르공이 최상의 역일 것이다. 가장 길기도 할뿐더러 또 가장 탁월한 희극연기술을 요하기 때문이다. 이 역을 연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면, 오르공이 식탁 밑에 숨어서 따르뛰프가 엘미르를 유혹하려고 수작떠는 것을 엿듣는 장면 같은 것이다. 이 장면의 성공 여부는 오르공을 연기하는 배우의 고도로 숙련된 무언극적 연기에 크게 달려 있다.
시간과 장소의 일치는 『따르뛰프』에서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방 하나면 충분하고 그것도 식탁 하나(오르공이 그 밑에 숨을 만한)와 벽장 하나(다미스가 그 속에 숨을 수 있는)만 있으면 된다. 이 두 경우를 제외하고는 장치나 도구를 특별히 사용하는 예가 없다. 행동은 계속적이거나 거의 그런 편이며, 단 하루 동안에 발생한다. 혹 연인들의 말다툼이 제외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에피소드들은 작품의 본 주제와 직접 관련된다. 『따르뛰프』는 분명히 고전적 전통 안에 있다.
그러나 몰리에르는 형식의 기존 개념보다는 연극적 필요에 따라 그의 기법을 다스렸다.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따르뛰프』는 지금까지 쓰여진 희곡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희곡의 하나로 계속 남아 왔다. 결함이 있지만 작품이 그것을 초월한다.
몰리에르 사후의 연극
몰리에르는 1673년에 죽었다. 그의 삶과 죽음은 당시의 프랑스에서 배우의 신분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작가로서 대단히 흠모를 받았던 그도 연기자였기 때문에 많은 명예를 포기해야 했다. 예를 들어 그는 프랑스 아카데미에 가입할 수 없었으며 죽었을 때는 기독교장을 거부당했다. 후기 로마 시대에 발표되었던 배우에 대한 교회의 탄핵이 아직도 유효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죽음에 임박해서 직업을 포기했는데 그것은 교회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나 몰리에르는 공연 중에 병이 들어 급사했다. 그는 일반적인 공식 절차를 받기를 거절했거나 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루이 14세의 중재가 있은 후에야 몰리에르에게 기독교장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최소한의 의식으로 치루어진 약식장례였다. 이렇게 배우의 경제적, 법적 신분은 1673년까지는 많이 개선되어 있었으나 그는 아직도 어떤 의미에서 버림받은 자였다.
몰리에르의 사망 이후 프랑스 연극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코르네이유는 1674년에 창작을 포기했고 라신느도 1677년 이후 일반무대를 위한 희곡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프랑스 극작의 위대한 시기는 1680년까지는 이미 끝나 있었다.
1673년 이후 극장의 수효도 꾸준히 줄어들었다. 몰리에르가 죽던 당시만 해도 파리에서 다섯 극단이 공연을 갖고 있었다. 즉 몰리에르 극단, 오텔 드 부르곤뉴와 마레의 극단들, 이태리 배우들로 구성된 극단, 그리고 오페라단 등이었다. 1673년에 오페라 연출가였던 장-밥티스트 륄리(Jean-Baptist Lully)가 빨레-르와얄의 지배권을 획득하자 몰리에르의 극단은 마레 극단과 병합되었으며 1680년에는 이 병합된 극단이 다시 오텔 드 부르곤뉴 극단과 통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마지막 합병은 프랑스 연극사살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서 이것이 세계최초의 국립극장이었던 코메디 프랑세즈(Comedie Francaise)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어느 연극단체보다도 계속적인 연극적 전통을 더 가깝게 구현하고 있다.
코메디 프랑세즈를 만들었던 명령은 또한 이 단체를 구속하는 법칙도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단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주식회사가 된 것이다. 배우들의 입단, 은퇴, 연금지불 및 기타 무수한 사항들에 대한 절차들이 확정되었다. 또 매년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다.
1680년 이후 얼마 동안 파리에는 세 극단이 있었다. 코메디 프랑세즈, 오페라 및 이태리 코메디아 델 아테 극단 등이다. 1697년에 이태리 극단이 추방당하자(루이 14세의 둘째 부인이었던 마담 드 맹뜨농(Mme. de Maintenon)을 풍자하는 공연을 한 뒤에), 그 수효는 둘로 줄어들었다.
1672년에 오페라(단체명)에게 뮤지컬 드라마, 훈련받은 성악가, 여섯 개 이상의 악기, 또는 복잡한 춤과 스펙터클을 활용하는 기타 형식들에 대한 독점권이 부여되었다. 이태리 극단이 쫓겨난 후 코메디 프랑세즈도 대화연극에 대해 비슷한 독점권을 획득했다. 이렇게 17세기 말까지는 파리의 연극이 위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은 극단들이 단단히 보호받는 위치를 견지했으며 이들은 18세기 내내 일체의 잠식행위로부터 자체방어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는 프랑스 연극을 성숙시켰다. 그것은 세 명의 위대한 희곡작가들, 즉 코르네이유, 라신느 및 몰리에르를 배출해 내었고 이들은 그 이후 프랑스 연극의 으뜸가는 본보기로 계속 남았다. 불행하게 1650년과 1680년 사이에 도달했던 그 정점은 수세대가 지나도록 탈환되지 못했다.
오스카 G 브로켓, 김윤철 역, 연극개론, 한신출판사, 1989, P.259 ~ 269
<모리엘의 생애와 그의 작품>
연극학보 제67합집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1973
서옥향, 모리엘의 생애와 그의 작품
1. 그의 생애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희극의 대표적인 작가이며 배우이기도 하였던 모리엘은 그의 원 본명은 장·바티스트·뽀끄랭으로서 '모리엘'은 그의 필명인 동시에 예명이었다. 1662년 1월 15일 파리에서 출생한 그는 부유한 실내장식업자의 장남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온갖 잡상인들이 들끓고 있던 그 속에서도 비교적 안이한 소년시대를 보낼 수 있었으며 동시에 상류가정의 자제들과 함께 고전과 철학, 법률등 당시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을수가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는 어릴때에 조부와 함께 극장으로 다닌 것을 동기로 그의 일생은 극장에서 시종했다. 그는 처음 베자르가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저명극단>(L'lllustre Theatre)이라고 하는 한극단의 단원으로 출발했고 나중에는 그 극단의 단장이 되어 1645년으로부터 10수년간 남불 각지를 순회공연 했으며 1658년에는 다시 파리로 돌아와 [연애하는 학자]를 써서 극단에 데뷔했다. 그후 국왕 루이 14세의 애호를 받고 다시, 1659년에 「정신없는 여인」이란 희극(1막)으로 명성을 얻게되자 파리에 정주하며 당시의 리슈류가 운영하던 발레·로와이야르, 즉 <왕립궁정극장>을 처음 자신의 극장으로 만들어 갔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이 극장을 그의 집이라고까지 부르게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코메디·프랑세스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이후 자작의 희극을 이곳에서 연출하였으며 1662년에 자기보다 20세나 아래인 베자르의 누이 아르만드·베자르와 결혼했다. 그렇지만 만년에 그 아내의 부정으로 무척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극단의 유명한 배우로는 자기의 처형인 마드레느와, 라씨느의 연인으로 나중에 부르고니 극단으로 옮겨간 드·빠르크라는 여배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또한 자작극의 유명한 배우이기도 하였으니 그의 연기술은 당시 이태리 희극의 명우였던 티베리오·퓌오레리의 연기술에서 많은 감화를 받고 있었다 한다. 1673년 2월 17일 그는 최후의 희극 「공상환자」에 출연하다 무대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으며 집에 까지 운반되자 곧 숨지고 말았다 한다. 이와 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서 노력하다 숨져간 작자이자 배우이며 동시에 극장경영주였던 그는 한 평생을 가정의 불화, 물질상의 궁지, 나아가서는 주위의 멸시와 음모 가운데서도 용맹하게 이들에 도전하고, 혹은 비웃어가며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2. 그의 작품과 당시의 극작 상황
그의 이같은 생활과 인간된 참 모습은 무엇보다도 현존한 그의 작품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데 무려 30여편에 달한 그의 작품들은 실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있다. 1막물의 희극을 비롯한 그의 초기작품들은 대개 이태리 희극이었으나 그것은 다시 프랑스인의 실생활을 묘사 풍자하고 있는 풍속희극 내지는 고도의 성격 희극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우선 그의 대표작들을 소개하면「부인학교」「타르퓨트」「돈·주안」「인간협의」「수전노」「여학사」등인데 이들은 모두 그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프랑스 고전주의 희극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러면 이들 작품 하나하나를 예로 들면서 작자 모리엘과 불란서 고전극의 참된 모습을 살펴 보기로 하자.「부인학교」(L'Ecole des Femmes)는 「정주학교」에 이어 1662년 작자의 결혼직후에 내어놓은 고전희극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는 12음절로 된 운문의 5막극으로서 「정주학교」와 함께 여성교육에 관한 작자의 진보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는것이며 작자가 사회문제에 갚은 관심을 보인 것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초노의 한 남성이 인간의 본능을 무시하고 한 소녀를 양육하여 자기본위의 처로 삼고자 했으나 결국 실패한 그 전말을 그린 작품으로서 풍자 문학의 대표적 시인 즈카론의 소설에서 그 제재를 구했던 것이다. 이 작품도 꼬르네이유의 「르·시드」의 경우와 같이 당시 많은 작가들의 멸시와 공세를 받았으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부인학교 시비」「베르사이유의 즉흥극」등 그의 시학이라고도 하는 작품들을 집필하여 그 다음해인 1663년에 공개 상연함으로서 이들의 비난을 물리치고 자기의 희극을 변호하는데에 성공하였다. 이들 비난의 요지는 그의 작품이 너무나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는 「부인학교 시비」의 드란드의 대사를 통해서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희극이 이러한 비난을 두려워 한다면 양식과 문법에 알맞은 정규의 언어를 선택하여 사용해야 하겠지만 희극상의 언어란 그러한 양식과 문법상의 언어 만으로는 부족한것이며 도저히 충분한 것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전극의 3통일의 법칙에 대해서도 그는 벌써 새로운 일가견을 이루고 있다. 그의 논지는 그 법칙이란 어디까지나 희곡이 통일성을 잃고 산만하여 관객의 흥미를 잃어갈때에만 필요한 것이지 이것이 작자에게 짐이 되어 그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력을 해치를 규제가 되어서는 안되며 모든 법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법칙은 관객을 즐겁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며 동시에 이러한 목적을 의식함이 없이는 정당한 고전극의 법칙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고전극의 준칙이 반드시 지상의 철칙이 아니며 그 준칙들은 이미 그 에게는 하나의 평범한 작법상의 요령으로 착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인학교」라는 희극도 말하자면 이 고전극 정규의 법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던 작품이며 각자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나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고전극의 준칙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즐기려는 사람을 위하여 쓴 작품이라는 것이며 그것이 연속68회의 상연기록을 수립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그는 그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가 있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드란드의 대사를 통하여 스스로의 희극을 변호하는 한편 그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보다 역설적으로 이를 대하고 있었으니 법칙을 수행한 희곡이 재미가 없고 법칙을 수행하지 않은 희곡이 보다 재미가 있다면 이 법칙적인 것이 잘못이란 결과가 된다라고 한 것이다. 「부인학교」에 대한 시비는 결국 그의 성공과 굴하지 않은 반감으로 일단락을 지었지만 그는 계속하여 「타르튜프」라는 희극으로 다시 종교계의 반목을 사고 말았다. 이 「타르튜프」라는 작품은 1664년 베르사이유의 궁정극장에서 개막되었으나 선량한 귀족일가를 파멸로 이끌어간 위선적인 종교가의 악덕을 통렬히 풍자한 그 내용 때문에 전 종교계의 반대로 곧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3년후인 1667년에 다시 「사기꾼」이라는 이름으로 제작, 상연되었으나 즉시 상연이 중지되었으며 1669년 이후에 비로소 많은 수정을 거쳐서야 일반에 공개된 작품으로써 그의 풍자극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는 이어 1665년에 그의 고전주의 희극으로서 가장 파적적인 「돈·주안」이란 작품을 내어 놓았으니 이는 스페인 희극의 모작으로 3통일의 법칙을 준수하지 않음은 물론, 희극적요소와 비극적인 요소를 함께 배합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방탕자이며 무신론자인 주인공으로 인하여 종교계의 비난과 방해를 받았으며 그로 해서 자진하여 상연을 중지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인간혐의」란 작품은 12음절의 운문 5막을 희극으로서 고전극의 제 법칙을 성실히 수행한 그의 본질적인 고전주의 희극의 총화라고도 하며 그의 성격희극으로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아르세스트는 너무 정직하고 솔직해서 주위의 조소를 사고 동시에 혐인벽에 걸려 연인과 친구들을 절연하고 사막 가운데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찾고자 한다. 이는 곧 작자 자신의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정직성을 조소하고 애인과 친구들의 배신을 한탄하며 나아가서는 자신의 무한한 동경과 원망으로 가득찬 작품이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주인공 아르세스트의 슬픔은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혹은 그 조소가 또 슬픔의 대상으로 전개되기도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만이 지닐 수 있는 높은 가치이며 이 작품을 「고급희극」이라고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극의 마지막에 나오는 주인공의 자기 반성은 곧 작자의 자조이며 반항이기도 하였던 것이니 이 주인공의 자조와 반항은 이 극 전체를 통해서 그 얼마나 남자다운 일인가를 알 수가 있고 한편 작자 자신의 불행은 또 여기에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전노」는 1668년에 나온 5막의 운문극으로 프라우터스의 「아우르라리아」의 모작이나 푸라우터스가 가난한 수전노를 취급했음에 반해 그는 부유한 수전노 알빠공의 돈에 대한 이상할 정동의 집착과 강열한 그 성격을 묘사하여 당시의 부르조아지를 신랄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그리고 1682년의 「여학사」는 그의 풍자극의 대표작으로서 역시 운문으로 된 5막극이다. 당시 귀족계급 부녀들의 사교적 예의로 시작된 선량한 싸롱 취미가 악용되어 나중에는 일반 2, 3류층의 부녀들 까지도 철학과 과학을 논하는 등 이를테면 부녀들의 현학취미가 도리어 여성고유의 매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을 풍자한 작품이다. 이밖에도 그의 주용작품으로는 「스가나레르」「암피트리온」「평민귀족」등의 많은 졸작들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전술한 바와같이 그의 시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인학교시비」에서 작자는 고전극의 법칙을 반드시 준수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비해 전기한 스페인극의 모작인 「돈·주안」을 제외한 그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고전극의 법칙을 보다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은 작자 모리엘이 그 만큼 형식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위대한 고전주의 애호가의 한사람이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러한 모리엘의 융통성을 계승한 프랑스의 국민적인 희극작가로는 르나르(1665-1709) 르·싸쥬(1668-1747) 마리오오(1688-1763), 보마르쉐(1732-99)등을 들수가 있는데 이들은 모리엘 이후로 그가 개척한 여러 가지 희극양식들 가운데서 하나씩을 전승한 대표적인 작가들이 었다. 예를들면 르나르는 경쾌한 12음절의 시를 구사하여 그의 대표작 「모든걸 받아들인자」(1708)등의 해학적인 소극을 성공했던 적자이고, 르·싸쥬는 「투르카르」(1709)라는 그의 걸작희극으로 당시 사회상의 하나인 악당만이 출연하는 풍속희극을 시도했던 작가이다. 「마리보오」는 연애희극의 창시자로서 「사랑과 우연의 장난」(1730), 「거짓된 고역」(1737), 「휘가로의 결혼」(1784)을 내었는데 이 두 작품은 18세기 프랑스가 낳은 누가 따를수 없는 역작으로서 고전주의 희극의 마지막 광채를 발산했던 작품들이다.
3. 모리엘 희곡의 특성
모리엘을 알려고 하면 우선 불란서의 고전주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불란서 고전주의 특징은 영문과 독문에 비해서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점은 인가의 연구이다. 다시말해서 인간에 연구라 하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말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느냐? 사랑이란 무엇이냐? 질투란 무엇이냐? 용감한 사람은 어째서 용감하고 비겁한 사람은 어째서 비겁하느냐? 구두쇠란 어디서 나오느냐? 죽음이란 무엇이냐?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대비하느냐? 이와같이 인생의 문제를 하나하나 의문점을 만들어서 여기에서 십리를 분석하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도 이것이 곧 불란서의 고전주의 정신이다. 이와 달리하여 독일이나 영국의 고전주의는 인생문제 보다는 좀더 광범이한 자연이나 우주에 대해서 눈을 돌렸다. 허나 불란서의 문학은 인생문제와 심리적 분석을 유달리 강하게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예로 들어보면 몽테뉴의<수상록>에 <인생이란 무엇인가><어떻게 살아가야 하나><공부는 어떻게 해야한다><외국어는 어너제 배워야 가장 이상적인가> 이러한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거의 다 대답해주고 있다. 16세기 와불레를 거쳐서 17세기까지 여러 문학자들이 그려낸 것이 인간에 대한 심리 분석이며 이런한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모리엘의 연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리엘의 희곡상 특징이 영국의 세익스피어나 독일의 괴테의 희곡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불란서의 전통적 사고 방식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불란서의 고전주의 특색과 관련하여 모리엘의 직접 활동한 17세기의 상황을 알아 보기로 하자. 한마디로 말해서 모리엘은 불란서의 고전극, 즉 희극을 완성시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때까지 (1660)만 해도 불란서의 연극은 성립되지 않았고 다만 중세기 소극(Sotie)과 바보극(Farce)등 전통적인 작품이 있었으나 16세기 르네상스를 맞이하여 이태리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문화사조가 들어오면서부터 이태리 세력에 눌려서 활발한 운동이 전개되지 않았고 불란서 연극도 자연히 침체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불란서 문학자 사이에 불어정화 운동이 일어 났으며 가장 활발이 움직인 곳은 라뿌데리라는 시인 단체이었다. 이 불란서 문화 정화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로서 불란서의 전통적인 연극 소극이 너무나도 조잡하다 하여서 상연하지 않고, 좀더 진보적이고 우아한 연극, 문학을 찾게 되었다. 물로 여기서 많은 폐단은 생기었다. 바로 모리엘은 이두가지 연극, 불란서의 Farce극과 이태리 희극의 융합을 시키는데 주력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Farce가 어떠한 것인가를 봐야한다. Farce란 불란서의 소극이다. 그런데 왜 불란서에 이태리 희극이 들어왔느냐하면 Farce가 재미는 있으나 너무나도 난폭하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봄에 세계 즉, 미래를 향하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문예부흥시대(고대로마희랍)을 돌아가는 것을 갈구하고 바라는 참인데 새로운 사조 이태리 희극이 침투하여 불란서에서는 침투당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태리 희극이라는 것이 어떤것인가? 이태리 희극특징은 세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로 어느극에서나 똑같은 인물이 나온다. 이것을 모리엘은 불란서의 Farce 에다 삽입 하였다. <스가르데>같은 인물은 <가짜의사>등 여러작품에서 볼 수 있다. 둘째로 즉흥으로 갈등극, 즉 대본이 없이 그대로 줄거리뿐 배우가 즉흥적으로 대사를 한다. 허나 여기서 알아 둘 것은 자동적으로 한다해서 배우 자신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연습과정에서 대사와 비슷한 것은 배우 자신도 모르게 간직된다. 이 즉흥극의 감정으로서는 배우의 독창성이 굉장히 강하게 되고 발랄하고 자발성이 있으며 무대에서도 싱싱한 맛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내용면에서 볼때에는 사랑의 갈등 등을 많이 취급하였으며 테마는 구두쇠로 하는데 그 바탕은 하인이나 종들의 기지로서 연극에 주인 노릇을 한다. 이러한 면은 희극의 특징을 엿 볼 수 있다. 세 번째 군데군데 연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쇼 비슷한 것을 삽입한다. 어떤때에는 곡예사가 나와서 곡예를 하면서 인간을 풍자하기로 하기도 하고 노래도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는 모리엘작품「서민귀족」에서 이러한 요소를 그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문예부흥시대(16-17세기)를 거쳐서 불란서의 문단은 불어정화 운동이 활발이 일어나 그 결과로서 중세의 문학의 저속한 형식같은 것은 전부 빼어버리기도 하고 고대(로마, 희랍)시대로 돌아가 그때에 문학을 순방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이태리 문학을 받아 들이는 결과에서 끝났다. 그래서 대강 모리엘이 나오기전 17세기 초에는 많은 작가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희랍시대 연극같은 테마위에서 연극을 하려고 하였지만 극단에서 취급을 하여 주지않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극단에서 희랍극 같은 것을 취급하여 주지 않은 이유로서는 이론이라는 것은 희랍으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면에서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극단에서 취급을 않해 주었다. 이러한 결과 고대 희극을 쓰려고 한 사람들은 대부분 의욕을 잃어서 쓰지 못하고 극단에서는 여전히 소극을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서 리얼리즘 연극이며 대개는 당시 사회문제 등 몇 개 문제를 대립 시켜서 갈등 문제를 내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고 풍자 같은 것은 강하지만 환상이 전혀 없는 연극이 유행하였다. 이것을 처음으로 개조하려고 시도 한 사람이 「꼬르네유」(비극작가)이다. 이 꼬르네유는 이태리 희극에서 불란서의 소극을 가미시켜서 현실성에 환상을 넣어서 좋은 작품을 만드려고 한 것이다. 꼬르네유의 처녀작으로는 「메르트」라는 희극을 썼다. 이 작품의 내용은 그 당시 불란서에서 유행하던 전원극 양치기의 <목녀들의 사랑>에서 신화적인 요소, 목가적인 요소를 빼어 버리고 현시로 가져가서 작품을 썼다. 꼬르네유가 이러한 운동은 시도한 동기는 불어정화운동 실패에서 온 공백기 때에 만들어진 싸롱드라마 때문에 소극을 보러 오는 귀족 관객들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원래 소극은 중세기에서부터 서민이 많이 구경하였는데 그 당시 서민은 연극을 구경할 만한 사회적 요소가 되지 않았다. 즉 물가 같은 것을 보더라도 연극 한편 구경하는 값이 서민의 노동 3일 값과 동일 하였으니 그 당시 연극은 완전한 귀족을 상대로 했기 때문에 귀족에게 인기를 잃기 시작하면서 연극의 흥행은 전혀 되지 않아서 연극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꼬르네유가 연극의 개혁을 한 것이다. 허나 꼬르네유는 과도기에서 성공하지 못하여 또 다른 스페인극 같은 것을 받아 을여서 비극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꼬르네유의 작품에 희극은 남아 있으나 그렇게 걸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젠 모리엘로 들어가겠는데 모리엘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는가를 알아보자. 모리엘이 처음 희극을 시작할 때 그때사회에서는 배우를 굉장히 천시하는때다. 마치 배우를 창녀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배우가 죽었을 때에는 신부가 와 주지도 않았고 천국에도 가지 못한다고 그 당시 사회에서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모리엘이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에는 부모와 대립이 심하였으며 아버지의 노여움이 대단히 엄하였다. 모리엘이 처음 지방 공연을 할 때에는 소극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전에 불란서의 소극과 이태리 희극과 가미 시키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여 처음 지방 공연을 할 때에는 소극을 가지고 간 것이다. 처음 시작한 화르스(소극) 내용은 어쩐다는 것이 남아 있으나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 처음 지방 공연으로 가져간 화르스는 주로 줄거리만 가지고 가서 배우가 즉흥적으로 하였다. 그러다가 그 다음으로 모리엘은 화르스를 그만두고 이태리 희극을 그대로 순방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금 그 작품으로 남아있는 것은 「경솔자」이다. 이것은 이태리 작가 니콜라 봐르으마가 쓴 「천박한 사나이」를 번안한 공연이였다. 모리엘이 이와같이 지방공연을 하면서 거의 성공하지 못하여서 자기가 만든 극단「데아트르 일리스트」는 망하여 빚더미에 쌓여서 재판까지 받았다. 이때 모리엘의 아버지느 한푼도 도아주지 않아서 「수전노」라는 작품을 보면서 자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리하여 많은 공연의 실패로 돌아가 모리엘은 파리로 돌아와서 작품을 썼다. 바로 이때가 모리엘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또한 이때가 불란서의 소극과 이태리 희극과 융합하여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만드는가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 극을 융합시켜서 모리엘 작품의 방향이 제시 되었다. 그 특징으로 남은 작품이 「남편의 학교」「가짜의 사」가 있다. 특징으로서는 나오는 인물은 한곳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이 작품, 저 작품에 마구 나온다. 그러나 대강 공통된 테마는 그 한 인물에 인가의 저속한 면을 대표하고 있는 점이다. 이젠 모리엘이 연극을 만든 과정을 알아 보기로 하자. 모리엘 작품에서 스잔나라는 인물이 나오기 시작할 때에는 모리엘에게는 성격 희극이라는 면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모리엘이 그려 내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성격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그 사회의 여건 풍속에서 오는 폐단에서 한 인물에게 집중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여기 작품에선 하나의 전용이 나오고 작가는 무자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판단한다. 성격 희극이라는 것은 당시 사회에 나타나는 폐단을 관찰하여 하나의 인간속을 집중하여 표현하였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모리엘 작품은 풍속희극이라고 볼 수 있다. 모리엘 작품을 풍속희극 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로서는 한 인물을 그려내고 있지만 거기엔 불란서(17세기)의 사회에 있어서의 폐단, 즉 사회적을 악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후에 이러한 면이 강조되여서 19세기에 와서는 풍속희극이 발달 되었다. 그 다음으로 테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리엘 작품에서는 「아르빠공」「따르튜프」라는 인간을 그려내서 사회적을 나쁜면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을 굉장히 공격하여 문제를 제시하여 놓았다.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 그 결과에서 오는 후세에 미치는 결과 이러한 면을 100∼200년 앞을 내다보고 예언하는 요소가 있다. 여기서 풍속극 테마극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인간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을 보면 세레맨이라는 여자를 중심으로 하여 그 당시 사교계에 나쁜면을 주입시켰다. 즉 인간의 허식을 무자비하게 들쳐 내었다. 여기서 한 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세레맨이라는 한 여자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착실한 「알세르」라는 인물을 대립시켜서 얼마나 허위가 사회적으로 많은 폐단이 오는가? 를 그려 놓았고 알세르처럼 허식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가장 성실한 인간이 허식이 가장 많은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회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허식을 미워할수록 그 여자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 (이것은 모리엘과 부인과의 관계를 나타냄). 이와같이 갈등하는 면도 있지만 결국은 알세트는 짐을 싸가지고 사막으로 간다. 이 작품에서 코메디가 되는 것은 알세르 이며 작품상으로 볼대 상당한 고차원적인 심리 분석극이다. 끝으로 모리엘의 작품은 90%가 남에게 작품을 도작한 것이며 실례로서 「수전노」라는 작품 (1688년 8월 9일 공연)을 보면 「냄비」「다리에워 유령소동」「아름다운 소송녀」에서 하나하나 장점만 가지고서 만든 작품이다.
서옥향, 모리엘의 생애와 그의 작품,
◎ Moliere 연구 (1)
Tartuffe의 극적 리듬 구조
연극학보 제24집,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1996
조우현
목차
Ⅰ. 서론
Ⅱ. 대사의 리듬
Ⅲ. 행동의 리듬
Ⅳ. 진행상의 리듬
Ⅴ. 결어
참고문헌
Ⅰ. 서 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리듬이 있다고 말한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모든 예술에도 리듬이 있다. 음악이나 시에 있어서 리듬은 많은 연구가 되어 있지만 드라마에 있어서의 리듬에 관한 연구는 많지가 않다. 어떤 상연된 작품에 대해 리듬이 풍부하다든가 리듬이 깨진다든가 하는 말들을 막연히 하면서도 실제로 연출가나 연기자에게 리듬에 관한 것을 구체적으로 예거하라면 너무나 막연하다고 한다. 템포는 장면이 진행되는 속도를 말하고 리듬은 대사의 흐름에서 파생되는 반복적 패턴을 말한다.(Osar. G. Brockett, The Theatre an Introduction, Holt, Rinehart & Winston, 1964. p.44) 우리가 리듬을 의식하는 순간 리듬이 깨어져 버린다고 할 만큼 리듬은 우리의 주변에,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리듬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심지어 리듬이 뚜렷한 음악이나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무대 리듬은 더욱 미묘하다. 그리고 우리가 적게 알수록 간단히 요약될 수 있다. 어떻든, 그 적은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사용하기 쉽다는 것을 다행히도 여러분은 알게 될 것이다.(Henning Nelms, Play Ptoduction, Barnes & Noble Books, 1964. p.126)
Henning Nelms는 비교적 리듬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극적 텍스트를 대했을 때는 막연하기 짝이 없다. Souriau의 미학 사전에 의하면 리듬이란 그리스어 rhuthmos에서 나온 것으로 "maniere de couler"로서 움직임 속의 질서(l ordre dans le mouvement)이며, 선, 형태, 색깔, 움직임과 소리의 질서바름(ordonnance)을 낳는다.(Etienne Souriau, Vocabulaire d'Estheique, P.U.F., 1990. p.1260.)
우리는 리듬이란 말을 광범위한 의미와 협의의 의미로 사용하는데, 광의의 리듬이란 자연의 리듬, 인체의 리듬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리듬을 의미하며, 연극, 무용 그리고 음악에서 사용하는 리듬이란 협의의 리듬이 될 것이다.
프랑스시에서의 리듬에 대한 정의는 비교적 명료한 편이다. Gramont은 뚜렷한 박자가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똑같은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것으로 정의하고 리듬분절(mesure)로 상세히 분석하고 있고, Mazaleyrat도 그와 비슷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불어에 있어서는 질서에 의해 그것(리듬)을 정의해야 할 것 같다. 이 질서는 어군의 반복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지각할 수 있는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 되는 것이다. 불어 문장에서의 리듬감은 액센트에 의해 정해진 어군의 음절수의 일련의 관계를 지각하는 것이 기초가 된다.(Jean Mazaleyrat, Elements de Metrique Francais, Armand Colin,1974, p.14)
대부분의 고전극들은 운문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Moliere의 많은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시에 있어서의 리듬론이 극 텍스트에도 원용될 것이다. 연극이란 무대 위에서 대사와 행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극 텍스트에서의 리듬연구는 대사의 리듬과 행위의 리듬으로 나뉘어 고찰되어져야 할 것이다. 위의 두가지 사항들이 등장인물들의 대사나 제스춰나 반응을 위주로 한 부분적인 것이라면 리듬이란 "총합된 어떤 질서에 의한 시간적 공간적 시스템"(Henri Delacroix, Psychologie de lart, souriau의 미학사전에서 재인용.) 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장면들에 의한 진행상의 리듬이 있을 수 있다.
Ⅱ. 대사의 리듬
비극은 운문으로, 희극은 산문으로 쓰여진다는 통성과는 반대로, Moliere은 운문과 산문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다. "Don Juan:, :Le Malade Imaginaire", "Le Bourgeois Gentihomme", "Critique de lEcole des Femmes"는 산문으로 쓰였고, "Le Tartuffe", "L'Ecole des Femmes", "L'Ecole des maris", "Psyche", "Le Misanthrope" 같은 작품들은 각운을 맞춘 운문이다. 그는 희극이나 비극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극적인 감정 뒤에서 웃음을 발견했을 뿐이다.
몰리에르는 웃긴다. 영혼과 인생의 이 서글픈 뒷면의 어디가 우스운지 찾아보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때로는 주제가 우세하다. 〈동주앙〉, 〈인간 혐오자〉, 〈따르 튀프〉, 〈상상병 환자〉등에 있어, 희극은 한순간 이 장르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그 한계를 뛰어 넘기도 한다. 감미로운 감정이나 고통스런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몰리에르는 이내 그런 감정을 억누르고 코메디로 돌아온다.(G. Lanson, P. Tuffrau, Historie de la Litterature Franciaise, Classique Hachette 1929, p.267)
"Moliere의 익살이 그 종류는 다르지만 Momeille의 숭고함과 같다."(Ibid)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 같아.
Moliere는 많은 반복 수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같은 장면에서 어떤 인물에 의해 되풀이되는 대사에 의해서건 상황이나 장면들의 부분들의 되풀이에 의해서건….
비평가들은 몰리에르가 광범위하게 반복수법을 사용했다고 특필했다. 똑같은 장면 중에 한 인물에 의해 반복되어진 말들에 의해서건, 상황이나 다소간의 장면의 형태 아래 만들어지는, 작품의 내부에서 에코와 같은 보다 광범위한 효과에 의해서건―(Jacques Scherer, Structures de Tartuffe, SEDES. 1974, P.150.)
Moliere의 작품에서 여러 낱말에 의해 표현된 사상의 반복형태가 많은데 Scherer는 이런 반복을 "la repetition molieresque"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Jacques Scherer, La Dramaturgie Classique en France, NIZET, 1986. p.349.)
같은 성질의 대사나 제스춰, 상황의 반복이 리듬발생(generateur de rythme)(Gabriel Conesa, Le Dialoque Molieresque, SEDES, 1992. p.395)의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면 Moliere 작품에서 이런 반복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리듬이란 "변화를 반복의 형태로 인식하려는 인간의 의식구조"(백대웅, 『인간과 음악』 이론과 실천, 1990.)라고 할 때 Tartuffe라는 작품을 떠받드는 사람들과 그러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반복의 형태로 파악하려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Tartuffe의 대사들은 거의가 12음절의 시구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사들 자체가 리듬을 갖고 있는 데 두 사람 이상의 대화들이 반복 될 때는 미묘한 효과들을 이루고 있다.
Moliere의 희극성을 얘기할 때 의례 예로 드는 Tartuffe 1막 4장에서, "Et Tartuffe"와 "Le Pauvre Homme"라는 말들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시골에서 돌아온 Orgon이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붇는데 Dorine가 부인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Et Tartuffe?" 하고 묻고, Tartuffe에 관해 얘기 할 때는 "Le pauvre homme"라고 응수한다. Jacques Scherer는 희극적 효과를 나타내기보다는 5막 3장에서 Organ이 Tartuffe의 정체를 깨닫고 난 뒤의 회한에 Dorine가 "Le pauvre homme"라고 비꼬는 대사와 연계시켜 강조 용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네 번의 반복은 틀림없이 극적인 기능을 갖는다. 많은 비평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희극적 효과를 만드는 반복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5막 3장에서 "도린느"는 분명히 냉소적인 의도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작품의 바로 끝에서 시초의 반복이 그걸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몰리에르의 작품에서 반복의 기능은 강화(renforcement)를 뜻한다.(Structure de Tartuffe, Op. Cit, p.151.)
그러나 Bergson은 구체적으로 이 장면을 예거하면서 "le diable a ressort"으로 설명하면서 희극성을 강조한다. 그는 연극에서 단지 낱말의 반복이 희극성을 낳는다고 보지 않는다. 특별히 어떤 정신적인 요소가 있는 놀이를 상징하거나 물질적인 어떤 놀이를 상징할 때 우습다는 것이다.
말의 반복은 그것 자체로서는 우스운 것이 아니라, 말의 반복은 그것이 정신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어떤 특정한 놀이를 상징하고, 이 놀이는 다시 물건을 가지고 하는 놀이의 상징이 될 때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Henri Bergson, Le Rire, Quadrige, P.U.F, 199., p.56.)
하녀 Dorine와 Orgon사이의 두 사람의 대응은 용수철과 그것을 짓누르는 le diable a ressort 놀이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희극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Bergson은 여기에서 억누르고 반발하는 용수철 놀이에서만 희극성을 찾았는데 Dornine가 Tartuffe와 Elimire의 이야기를 교차시키고 Orgon은 "Et Tartuffe?"와 "Le Pauvre homme!"라는 짧은 리듬있는 댓귀를 통해서 어느쪽이 억누르고 반발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거기에 Dorine의 호흡이 긴 12음절의 대사와 Oregon의 3·4음절의 빠른 리듬이 뒤섞이어 보다 풍부한 희극성을 창조해낸다.
Tartuffe 2막 1장에 다음과 같은 대사들이 있다.
Orgon : Qu'il Touche votre coeur, et qu'il bous serait doux.
De la voir par mon choix devenir votre epoux Eh?
Mariane : Eh?
Orgon : Qu'est-ce?
Mariane : plait-il?
Orgon : Quoi?
Mariane : Me suis-je meprise?
Orgon : comment?
Mariane : Que voulez-vous, mon pere, que je dise.
Qui me touche le coeur, et quil me serait doux.
De voir par votre choix devenir mon epoux?(Hachette, Le Tartuffe, 1992. p.50)
17세기의 관습적인 리듬 강세음을 3, 6, 9, 12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하는데(Gabriel Conesa, Op. Cit. p397) Tartuffe의 리듬 구조는 이에 따르기보다는 훨씬 다양하다.
"Quil touche vorte coeur, et quil vous serait doux
De le voir par mon choix devenir votre epous"는 2, 6, 11, 12와 3, 6, 9, 12의 구조를 지니면서 인칭만 바뀐 채 Mariane가 되풀이하고 있다.
Tartuff의 긴 대사들은 대부분 12음절 싯귀로 되어 있는데 간혹 짧은 싯귀들이 삽입된다. 그 결과 대조가 생기고 관객의 주의력을 환기시킨다.
Gabriel Conesa는 짧은 대사들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 시키고 있다.(Op. Cit. p97.)
Personnag A : Affimation (긍정)
Personnag B : Doute (의심)
Personnag A : Confirmation (확인)
Personnag B : Enchainement (연계)
Conesa는 이런 도식들 기본으로 몇가지 변형을 만들고 있는 데 여기서는 Orgon과 그의 딸 Mariane의 서로의 affirmation과 doute가 겹치고 있다. Orgon과 Mariane의 "Eh?"라는 감탄사의 의미가 서로 다르고 "Quest-ce?"와 "Plait-il?"에서는 강약조(trochaique)와 약강조(iambique)로 리듬이 깨드려진다. 그것은 Orgon의 뜻밖의 말에 의아심과 혼란에서 오는 일시적인 불규칙한 심장의 박동과 같은 것이다. 그러다가 "Me suis-je meprise?"와 "-que je dise"에서 "meprise"가 각운을 이루면서 다시 이전의 리듬이 회복된다.
Ⅲ. 행동의 리듬
표현주의 연극이 강한 리듬을 요구한다면 사실주의 연극은 비교적 가볍게 리듬이 표시된다.(Henning Nelms, Op. Cit. p.128) 2막 전까지는 운문에 의한 가벼운 대사들의 리듬에 의존하지만 2막 2장에 이르면 행동과 함께 강한 동작의 리듬을 갖게 된다.
Dorine : Je n'en parle, monsieur, que pour votre interet.
(Elle l'interrompt toujours au moment qu'il se retourne pour parler a sa fille.)
Orgon : C'est prendre trop de soin : taisez-vousm s'il vous plait.
Dorine : Si l'on ne vous aimait….
Orgon : Je ne veux pas qu'on m'aime.
Dorine : Et je veux vous aimer, monsieur, malgre vous-meme.
Orgon : Ah!
Dorine : Votre honneur m'est cher, et je ne puis souffrir.
Qu'aux brocards d'un chacun vous alliez vous offrir.
Orgon : vous ne vous tairez point?
Dorine : C'est une conscience.
Que de vous laisser faire une telle alliance.(Tartuffe, Op. Cit. p.56, Acte 2. Scene 2.)
여기에서 Orgon이 그의 딸 Mariane에게 말을 걸지만 하녀인 Dorine가 계속해 그녀의 대사를 대신해준다. 흔히 코메디에서 어릿광대들이 숨어있다가 time pattern을 이루면서 나타나듯이 dorine는 marianedkv에 뛰쳐나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감히 하지 못할 항변을 되풀이 한다. 그래서 "Si l'on ne vous aimit"의 6음절은 바로 "Je ne veux pas qu'on m'aime"와 overlap되면서 앞 뒤의 12음절 시귀와 균형을 이룬다. 그 다음의 Orgon의 6음절 대사와 dorine의 6음절 대사도 마찬가지다. 각운도 평운을 이루면서 이 장면의 리듬이 빠르고 강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Orgon이 제지하는 데도 막무가내로 Dorine가 나서서 대꾸하는 행동은 Bergson이 말하는 le diable a ressort의 용수철을 생각나게 하는데 그것이 이 리듬에 희극미를 더해준다.
P. Larthomas는 리듬 문제야 말로 보다 복잡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의 리듬은 없지만, 같은 텍스트 안에서 기껏해야 서로 결합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서로 대립되고 리듬적 요소들이나 리듬들이 있을 뿐이다.(Gabriel Conesa : Op. Cit. p.396-397에서 재인용)
Orgon과 Dorine는 자신들의 주장을 일관되게 되풀이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첨예한 대립이 또한 되풀이되면서 묘한 리듬을 이룬다. Tartuffe 전체를 통해서 보자면 두 개의 큰 리듬이 대칭을 이루면서 흐르다가 마침내 하나로 통합이 된다. 그것은 Tartuffe를 옹호하는 Orgon과 Mme Pernelle과 나머지 가족들의 반대되는 흐름이다. 이 두 개의 큰 리듬안에 많은 작은 리듬의 요인들이 있는 것이다.
2막 4장에서 젊은 여인들 Valise와 Mariane 사이의 사랑의 말다툼에서 생기는 반응들은 누구나 금방 느낄 수 있는 감미롭고 빠른 리듬이겠지만 여기에서 두 연인들의 안타까움과 깊은 애정이 결합되는가 하면 시기와 질서에 의해 대립을 이룬다.
Valere : On vient de debiter, madame, une nouvelle.
Que je ne savais pas, et qui sans doute est belle.
Mariane : Qioi?
Valere : Que vous epouses Tartuffe.
Mariane : Il est certain.
Que mon pere sest mis en tete ce dessin.
Valere : Votre pere, madame….
Mariane : A change de visee.
La chose vient par lui de metre proposes.
Valere : Quoi? Serieusement?
Mariane : Qui, Serieusement.
Il s'est pour cet humen declare hautement.
Valere : Et quel est le dessein ou botre ame sarrete.
Madame?
Mariane : Je ne sais pas.
Valere : La reponse est honnete.
Vous ne savez?
Mariane : Non.
Valere : Non?
더 이상 대사를 열거할 필요없이 기본적인 12음절 싯귀가 단음절이나 짧은 싯귀로 끊어지면서 빠른 휴지가 교차된다.
모든 예술은 행동과 휴지의 대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음악에서는 최초의 리듬을 다양화하고, 다소간 긴 정지로 때때로 리듬의 전개를 중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시각예술에서도 빛과 그림자를 교체하는 것이 필요하다.(Emite Jacques Dalcroze, La Musique et Nous, Slatkine, 1981. p.23.)
그림예술이 빛과 그림자의 교체로, 음악예술이 짧고 긴 휴지로 리듬을 다양화 하듯이 모든 예술은 행동과 휴지의 콘트라스트라고 말한다. 긴 호흡 다음에 짧은 호흡이 교차될 때마다 우리는 경쾌한 리듬을 금방 감지할 수 있다. Mariane와 Valere의 사랑의 변덕이 경쾌한 리듬을 획들함으로서 훨씬 강조되고 있다.
Ⅳ. 진행상의 리듬
프랑스의 고전극들은 보통 "french senes"라고 말해지는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등·퇴장에 의해 장(scene)이 바뀐다. 성격 또는 사상의 새로운 측면을 노출시키거나, 결정적인 순간이 가까이 다가옴을 느끼는 서스펜스의 증가나 정서적인 강도를 제고시키는 데 의해서, 장면들은 흥미를 관객에게 증가시킨다.
장면들은 흥미를 감소하기보다는 증대시킨다. 이 효과는 성격 또는 사상의 새로운 측면을 노출시키거나, 써스펜스(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옴을 느끼는 것)를 증가시키거나 정서적인 강도를 재고 시키는 데서 이루어진다.(G. Brackette, Oscar, Op. Cit, p.31.)
연극의 리듬은 대사에서 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장면 또는 어떤 상황의 반복에서도 온다. 반복이 곧 리듬은 아니지만 "리듬이 언어행위에 부가되는 것이지 리듬이 언어행위에서부터 유래된 것은 아니다."(Henri Suhamy, La poetique, 김태영 옯김, 탐구당, p.106.)라는 말처럼 대사나 움직임 장면 등에 연극인(연출가나 배우)이 리듬을 부여하는 것이다.
Tartuffe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가진 5막의 운문극인 Tartuffe에서 정작 Tartuffe가 등장하는 것은 3막 2장에서이다. 1막과 2막은 그러니까 Tartuffe가 등장하기 전에 관객들에게 그에 관한 정보를 주는 것 뿐이므로 차라리 3막극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3막극으로 쓰였더라면 Tartuffe의 등장이 지체된데 대한 반대자들의 비난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3막 이후의 이 작품의 주요한 구조를 보면 3막과 4막에서 Elmire와 Tartuffe의 사랑장면, 그리고 Tartuffe의 정체가 마침내 폭로되고 5막은 denouement으로 해피엔딩을 이른다. 3막과 4막에서 Elmire와 Tartuffe의 사랑의 장면은 같은 리듬을 가지면서 클라임막스로 이르게 되는데 이는 racine의 Phedre를 그녀의 세 개의 큰 고백에 의한 진행의 리듬으로 정해진 작품으로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渡邊守章 프랑스 文學講座=演劇 racine 演劇., 大修館書店 1977) pp. 221∼222
제 1의 고백은 phere가 그녀의 유모 앞에서 hippolyte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며,
제 2의 고백은 hippolyte 앞에서 하는 고백이며, 제 3의 고백은 그녀가 독을 마시고 죽기
직전에 남편인 Thesee 왕에게 하는 것이다.
)
3막 3장에서 Elmire가 딸의 결혼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Tartuffe를 단둘이서 만나기를 청하자 그는 더 없는 호기라 생각하고 그녀를 유혹한다. 현대에 있어서도 호색한들이 여자를 유혹하는 데 가장 멋진 표본이 될 온갖 미사여구들이 동원된다. 아름다운 표현과 긴 리듬이 단어의 배치에 의한 nombre의 변화에 의해 상대방을 꼼짝하지 못하게 한다.
L'amour qui nous attache aux beautes eternelles (2+4+3+3)
Netoffe pas en nous lamour des temporelles: (4+2+2+4)
Nos sens facilement peuvent etre charmes (2+4+1+5)
Des ouvrages parfaits que le ciel a formes (3+3+3+3)
Ses attraits reflechis brillent dans vos pareilles: (3+3+1+5)
Mais il etale en vous sees plus rares merveilles: (4+2+3+3)
Il a sur votre face epanche des beautes (2+4+3+3)
Dont les yeux sont surpris, et les coeur transportes, (3+3+3+3)
Et je n'ou pu vous voir, parfaite creature, (4+2+2+4)
Sans adnurer en vous l'auteur de la nature, (4+2+2+4)
Et d'une ardente amour sentir mon coeur atteint, (4+2+2+4)
Au plus veau des portraits ou lui-meme il sest peint. (3+3+3+3)
다양한 nombre로 상대방을 현혹시키다가 9, 10, 11 행에서는 최대의 극찬을 4+2+2+4라는 똑같은 리듬으로 상대방의 시선마저도 꼼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낸다. 그리고는 4행을 지나면 감탄조로 상승한다.
Mais enfin je connus, o beaute toute aimable,
Que cette passion peut netre point coupable,
Que je puis lajuster avecque la pudeur …
"O beaute toute animable"은 두 개의 접속사 que로 연결되는데 Gabriel Conesa에 의하면 시구 초두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잡으므로 통사론적이자 동시에 운율적인 면에서 리듬을 확실하게 표시하면서 자기의 정열을 공격적으로 합리화한다.(Gabriel Conesa, Op. Cit, p.411.
"… la conjonction que est reprise a intervalle regulier en debut de vers, et permet ainsi des attaques qui marquent nettement le rythme, a la fois syntaxique et metrique")
Ⅴ. 결 어
tartuffe 라는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세 개의 리듬이 커다란 파장을 이루면서 흐르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Pernelle 부인과 Orgon이 Tartuffe를 맹신하면서, 끊임없이 가족들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는 것과 다른 가족들의 그에 반한 반격의 두 흐름이 있고, Tartuffe가 거기에 적절히 반응하면서 탐욕스런 그의 욕망을 실현해 가는 거대하고 강한 리듬이 있다. 그런 리듬의 흐름을 대사와 행동과 극 진행상의 상황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살펴봤는데, 대사의 리듬에 관해서는 Gabriel Conesa(Gabriel CONESA : Op. Cit, p.418.)가 세 가지로 특성을 들고 있다. 첫째는 강세배치(accentuation)가 엄격하지만 단조롭지 않도록 유연성이 있다는 것, 둘째로 한 문장 속에 여러 절(propositions)이 배치되고, 한 대사속에 여러 문장이 배치되어 그것이 숨쉬는 리듬 발생기(generatrice dun rythme respiratoire)가 되어 문장이 숨쉬듯 생생하다는 것, 셋째로는 통사론적 특성의 리듬 효과인데 전치사나 접속사들을 반복하는데 의해서 분명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복합적 문장구조를 들고 있다. Tartuffe의 대사의 리듬도 위의 세 가지 특성을 지니면서 거기에 한가지를 더 첨가하자면, 짧고 격한 리듬이 나타날 때면 전체적인 12음절 시귀의 틀을 과감히 깨트리고 있는 것이다. 그 경우 단음절어에서 6 음절어까지 다양한데, 6 음절어로 된 대사의 경우에는 다음 대사가 다시 6 음절어로 이루어지면서 다음 대사와 overlap되어 12 음절어의 대사를 이루게 된다.
극 진행상의 리듬은 텍스트를 무대화 할 때 작품을 개관할 수 있게할 것이며 기승전결의 구조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모든 효과적인 연극작품은 질서정연한 시작, 중간 그리고 끝이 있다. 리듬에 맞춘 행동은 논리적인 동작의 단위로서, 보다 큰 주기로 진행된다. 그러나 그 행동은 완전한 직선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 행동은 물결치듯이 진행된다.… 강화된 행동의 작은 정점이 있고, 같은 행동의 더 큰 정점이 있다.(Samuel SELDEN 『무대예술론(The Stage in Action)』 김진식 역, 현대 미학사, 1994, p.203.)
1막과 2막은 Tartuffe의 등장을 준비하기 위한 가족들간의 갈등들이 작은 정점을 이루면서 잔잔한 파도를 만든다면, 3막과 4막의 사랑의 고백장면들은 큰 정점이 되면서 세찬 파도를 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행동의 리듬은 텍스트만 가지고는 개략적인 언급밖에 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서, 지문이라든가, 휴지, 대사 속의 지시어나, 움직임을 통해 연출자나 연기자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참 고 문 헌
Oscar. G. Brockett, The Theatre an Introduction, Holt, Rinehart & Winston, 1964.
Henning Nelms, Play Production, Barnes & Noble Books, 1964.
Etienne Souriau, Vocabulaire dEsthetique, P.U.F., 1990.
Jean Mazaleyrat, Elements de Metrique Francais, Armand Colin, 1974.
Jacques Scherer, Structures de Tartuffe, 1974. SEDES,
Jacques Scherer, La Dramat urgie Classique en France, NIZET 1986.
Gabriel Conesa, Le Dialogue Molieresque, SEDES, 1992.
Henru Bergson, Le Rire, Quadrige, P.U.F., 1993.
Emite Jacques Dalcroze, La Musique et Nous, Slatkine, 1981.
Henri Suhamy, La poetique, 김태영 옮김, 탐구당.
백대웅 : 『인간과 음악』 이론과 실천. 1990.
Sumuel Selden, 『무대예술론』 김진식 역, 현대 미학사, 1994.
연극학보 제24집,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1996
조우현 - Moliere 연구 (1) - Tartuffe의 극적 리듬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