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레슨 실험은 꽤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허기진다.
대략 30주 즉 8개월 정도는 만나야 반 페이지 분량의 대사를 ‘말’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이 결과물만으로도 놀라운 일이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원래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친구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가장 어려운 4단계로 접어들어야 급진적인 발전이 이루어진다. 4단계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만나는데, 흔히 말하는 강조, 호흡, 포즈, 오버랩 등등의 문법을 이용해서 임팩트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 접어들면, 다른 공연 작업에도 어렵지 않게 적용이 된다.
몇몇 친구들이 증명이 된 탓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은 생겼는데.... 허기진 느낌은 떨칠 수 없다.
허기지는 이유는 기간이다. 결코 10개월이 걸릴 일이 없는데,
이전의 습관(뇌의 기작)이 좀체 새로운 길을 내는데 협조를 하지 않은 탓이다.
뇌의 기작 I
잠을 자는 사이 뇌의 기억은 정리된다. 주로 삭제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어제의 기억은 물론이고 한 달 전, 일 년 전 기억은 한정 없이 사라진다.
문제는 어떤 기억들이 사라지느냐에 달려 있다. 주로 고통이나 혐오감 그리고 거짓말의 기억 등이 사라질 확률이 높다. 외운 대사를 말로 바꾸는 일은 거짓말할 때 시냅스의 연결과 거의 흡사하다. 결국 음만 기억하게 만들고 연기가 제대로 꽂혔을 때의 “싸~”한 느낌은 삭제되기 마련이다.
뇌의 기작 II
우뇌와 좌뇌의 경쟁에서 주로 좌뇌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
전전두엽은 변연계를 끊임없이 지배한다.
좌뇌와 전전두엽은 이성을 관장하고 우뇌와 변연계는 감성 혹은 본능과 가깝다.
이들을 중심으로 연결된 시냅스의 연결망들은 뇌 안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한다.
일상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뷔페에서 한껏 먹은 후 디저트 타임에 먹음직한 아이스크림이 눈에 들어온다. 위장은 한순간 공간을 만들어 낸다. 문득 다이어트를 떠올린다. 전전두엽이나 좌뇌의 기작이다. 반면 우뇌와 변연계 그리고 비피도박테리아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종용하고 합리화를 시켜 된다. “괜찮아 먹어!”.“살 좀 찌면 어때?” 순간 또 다른 시냅스의 연결망이 조심스레 타협점을 제시한다. “반만 먹어!” 혹은 “먹고 운동해!”. 이렇듯 아주 짧은 순간에 시냅스의 연결고리들은 서로서로 경쟁을 한다.
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사가 진짜 말로 표현될 때가 있다. 혹은 진짜로 빡쳐서 나가는 소리가 형성될 때가 있다. 순간 뇌의 입장은 이렇다. “너 미쳤니? 왜 거짓말을 해!!” “흥분하지마!”
뇌는 결코 연기의 기작을 알지 못한다. 수만 수십만년 동안 입력된 DNA의 결과물이다. 진짜 말에 가까운 대사가 구사되는 순간 어미가 툭 떨어지거나 다음 대사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이 역시 시냅스 연결고리들의 경쟁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38년간 최소 1000명은 관찰한 셈인데...
말이 되던 친구들도 20년이 지나자 쪼에 빠져드는 것을 보고 무척 의아해 했었다.
‘뇌의 기작 I’과 ‘뇌의 기작 II’의 내용으로 비추어 그들의 뇌에 기록된 거짓말 현상이 점차 지워져 나갔거나 이성의 힘이 감성의 힘을 눌렀기에 생긴 경우였던 것이다.
발레리나는 365일 내내 턴아웃을 위한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 안하면 허벅지 근육이 차츰 안으로 접혀들기 때문이다. 연극 작업이 없을 때도 발레의 턴아웃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된다는 얘긴데, 아직 그 답을 찾진 못했다. 사실 찾았는데 하게 만들지 못했다.
”대사를 말로 구사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원할 때 끄집어낼 수 있다.“ ”틈만 나면 외운 대사로 상대에게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하라고 그리도 반복했건만........ 쪽팔려서겠지?..... 하지 않더라.
언젠가 인공지능이 보편화 될 즈음이면 지금 8달 정도 걸리는 프로그램이 아마 두어 달 만에 터득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본다. 뇌전도 실험도구가 엄청 싸지고, VR과 인공지능의 코딩이 보편화 될 즈음이면 그리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뇌 과학’과 ‘4차 산업’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