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의 최고 능력 중 하나는 '선택'이다.
연극을 만들다보면 간간 넘친다. 혹은 빈다. 넘쳐도 문제고 비어도 문제다.
처음 생각대로 만들어질 연극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만들다가 더 나은 요소들이 형성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시작과 끝이 관통되기는 정녕 힘들다. 'Plot'과 'Unity'에 관한 문제다.
생각대로 만들어지면 연극할 재미가 있겠는가? 생각의 레벨이 아주 낮으면 몰라도...
문제는 여러군데서 생긴다.
연기자의 이해 부족/ 표현력의 한계/ 연출의 납득실력/ 배우간의 부조화/ 마찰/ 집안문제/ 스텝의 미적거림/ 공연전날 사라지는 친구/ 정전사고.....
연출은 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터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사고가 터질 때마다 공력은 강해진다. 물론 해결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해결책은 항상 같다. '선택'이다.
둘 다 얻으면 좋겠지만 주로 하나는 버려야 한다. 버릴 때 염두에 둬야할 첫번째 요소는 '관객'이다. 그들이 원하는 세계를 꿰뚫어야 한다.
- 그들은 지루한 것을 싫어하고, 실수를 용케 비켜가는 거에 열광한다.
- 그들은 엉성한 거에 대해서는 짜증을 내지만 열정은 높이 산다.
- 그들이 바라는 건 단순한 재미가 아니다. 뭉클함이나 기막힌 앙상블이나 삶을 흔드는 이야기 따위다.
연극은 잘된 공연과 후진 공연의 격차가 심한 예술이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연출의 숙명이다.
포항시립극단 [굿닥터]의 대본과 음악과 무대를 정리하면서 이 복잡한 모든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고 한페이지씩 넘기다보니 어느새 날이 샜다.
제작내내 60개 정도의 시련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한다. 이미 10번 정도의 사건들이 지나갔다.
남은 기간 '선택'의 영감(inspiration)이 늘 내 곁에 바짝 붙어 있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