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항시립극단 연습 일지 중에서...
닐 사이먼의 [굿닥터] 중에 '오디션'이라는 장면이 있다.
체홉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 20후반의 한 여자연기자의 이야기다.
언뜻 보기에 숫기없고 어리숙해 보이고 심지어 자신감마저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여배우가 안톤 체홉의 마음을 사로잡고 오디션을 합격했다.
과연 어리숙한 배우였을까? 매번 질문이 이해되지 못했을까? 정녕 자신감 없는 배우였을까? 이런 멍청한 여배우가 당대 최고의 위치에 있던 안톤 체홉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을까?
슈스케 '장재인'의 예를 들어 주었다. 그 친구는 자신의 노래에 정녕 확신이 없었을까? 어리숙한 게 전략은 아니었을까? 왕따를 당한 이유가 키도 크고 얼굴도 이쁘고 노래까지 잘하는 아이가 혹시 여우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우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케 보는지 정확하게 안다. 착해보이는 걸 무기로 삼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고, 험하게 보이는 사람 중에 착한 사람도 엄청 많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성격이나 이미지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니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여배우의 이름이 과연 니나였을까? 요즘 연영과 입시에서 자신의 스펙을 속이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뭐가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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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보러 온 이 여배우는 어리숙해 보이는 자신의 성격을 철저히 이용했다. 오데사(지방도시) 출신이라는 약점과 나이의 한계를 교묘하게 극복하고 당당히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0.1mm라도 여우처럼 보였다면 아마 떨어졌을 것이다. 아니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지잡대 출신들에 대한 선입견을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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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이다. 국내 첫 외주프러덕션 '시네텔 서울'의 오디션을 우연찮게 본 적이 있다. 단역이었는데 당근 합격했지만 제주도 촬영이라 못한다 했다. 안민수교수의 수업을 빠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난 평범해 보이는 내 자신이 싫어서 고무신을 신고 독특한 검정색 안경테로 무장한 채 살고 있었다. 첫 오디션 날의 모습도 그랬다.
당대 탑클라스였던 심현우PD는 얼굴을 가린 채 신문을 읽고 있는 척 했고 살짝 긴장한 내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 여우 김태용 아니던가 ㅋㅋㅋ! 곧 바로 소파에서 자버렸고 커피를 내놓는 아가씨에 의해 잠을 깨는 동시에 어리숙해 보이는 말투로 감사를 표했다. 고무신에 검정뿔테에 침흘리며 자는 이상한 배우에게 관심이 안갈 PD가 어디 있겠는가?
시네텔 서울의 두번째 작품에서 당당히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1985년에 방송된 MBC베스트셀러극장 '우리가 떠난 도시'가 바로 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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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니나라고 구라친 그 어리숙한 여배우의 전략이 나와 다를 바 없다라고 확신한다. 단지 관객 마저도 확실하게 속여야만 한다. 그래야 닐 사이몬이 계산한 장면목표가 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