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특히 느끼게 된 일이다.
우리나라 연극학과 교수님은 너무나 바쁘다. 바쁘다 못해 안타깝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학생 수가 상대적으로 너무 많고, 제작실습, 방학 때 하는 워크샵 공연, 일년 주요행사인 젊은 연극제, 졸업공연, 수시모집, 정시, 교수회의, 연극학회, 연극협회, 대학로 포럼, 공이모, ITI, 대학연극제, 청소년연극제 심지어는 관련학과인 영화학과 영화제에도 관심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경우에 따라 극단에 소속된 경우도 적지 않고 의뢰 연출이나 번역 혹은 드라마투르기 등의 활동도 겹쳐지게 된다.
13년 전까진 나도 학생이었고 웬만큼 바쁜 축에 속했다. 1년 중 두번 정도의 공연제작에 온 힘을 기울였고 과제나 시험을 위한 벼락치기 행사도 간헐적으로 치뤄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만큼 바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바쁘다'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 많아 쉴 사이가 없다.'이다.
일이 많은데 너무 많으면 바쁜 게 아니라 일에 치이게 된다.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일에 치이고 있다. 우선은 행사가 너무 많고 그 행사가 실제적 효과보다는 전시적 효과에 치중되는 경향이 크다. 작품을 제작하는 중에도 행사는 여전히 치뤄진다.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집중이 관건인데....
수레무대 사람들은 바쁘긴 하지만 집중을 잃지는 않는다. 시간이 부족하면 준비 기간을 늘린다. 현재 공연 중인 <꼬메디아>는 2년 반을 준비했고, 내년 여름 시즌부터 공연될 <아르르깽, 의사가 되다>의 번역및 각색은 이미 진행 중이고, 이달 말부터는 훈련에 들어간다. 3년 후에 제작될 <피오키오>의 계획 역시 변동될 일이 없다. 한꺼번에 4개의 작품을 거의 동시에 소화해내곤 했지만 밀도를 잃진 않았다.
학생들에게 시간의 철학을 심어줘야 한다. 언제인가 드러날 자신의 최고점이 10년 후나 20년 후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시켜줘야 한다. 기회의 문제가 아니나 능력의 문제라는 철학을 반드시 심어줘야 한다.
지원제도의 집행은 모두 1년 내에 마감되어야 하고, 젊은연극제나 졸업공연 역시 번개불에 콩구워먹기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바쁘게 바쁘게 살도록 그렇게 형성된 안타까운 구조이다. 1년도 안돼 재신임을 묻는 대통령의 심정도 이런 구조의 산물이 아닐까?
구조가 바뀌든 철학을 심어주든 반드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03년 10월 11일 정오 극단 수레무대 대표 김태용 심정
2003/10/11 12시56분1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