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하다 보면 간혹 지옥의 늪 깊숙히 빠져듦을 느낄 때가 있다.
공연 당일 연기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든지, 공연 중에 배우가 크게 다치는 경우, 공연 하루 남겨 두고 배우를 짤라야 할 상황 그리고 확신했던 그림이 말짱 헛 것으로 느껴질 때......
그저께 상황이 그러했다. 조명이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과 주변 진행 상황을 고려할 때, 애초에 계산했던 조명 개념이 모두 헛 것으로 여겨졌다. 아니 헛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큰소리를 친다. "될거야! 아니, 돼!"
오늘 그 지옥에서 슬금 벗어났다. 무대가 서고, 의상을 입고, 연습이 진행되자, 첫 개념들에 대한 확신이 조금씩 되살아 났다. 휴....휴....
공연 사흘을 남긴 시점에서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역시 천당은 상대적인 공간이었다. 현재가 천당일 순 없어도 지옥을 벗어나니 천당처럼 여겨진다.
[어린왕자]의 무대와 조명만 설정되면 만사 오케이다.
최소한 욕은 듣지 않겠다.
물론 맘 속 깊숙히선 '이번 작업은 이전 작업하고는 분명히 틀려" "1년 반 서울 한가운데서의 합숙훈련이 맹물이진 않을거야"
스스로 이런 기대를 가져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월요일이 기다려지고, 일주일 후가 기다려진다. 몇 일 밤을 새고, 신경 곤두세우고, 초과된 흡연의 현상황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이들의 합숙훈련의 가치를 어떻게든 보상받게 하고 싶다.
3일간을 초집중의 상태로 보내야 한다. 차갑게 현명하게 이성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그렇게......
연극의 즐거움이라 치부하자.........연습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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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혹은 단원이었던 이들에게 기분 나쁜 이유들 (2007/1/31)
나이를 먹으니 속이 좁아진다. 한때 기분 나쁜 감정이 사라질 법도 한데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들은 당사자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은 다 까먹고 상대방의 잘못만 기억한다는 사실을 익식하면서 부터이다.
누구나 잘못을 한다. 문제는 자신의 잘못은 쉽게 잊으면서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한 상처들은 유달리 강하게 기억된다는 사실이다.
정은...경하...은진에게 유별나게 느끼는 경우들이다.
모두 연기도 잘하고 프라이드도 강한 여배우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잘못들도 인정하리라 믿었는데 무척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잘못만 기억되는 것 같다.
요즘 화가 부쩍 나는 이유는 수레무대를 지킨 많은 이들이 그들의 도마 위에 올라 판단되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이다.
정은에게 화가 났던 연유는 01년 <청혼> 공연시 정은에게 화내기 전에 정은의 경하에 대한 '개그 같다'라는 표현 후 경하가 급격히 연기에 지장을 받았던 사실 때문이었다. 연출의 입장에서...무척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그러다가 주차문제가 불거졌고 화를 냈다. 왜 화를 냈는지 한번은 물어볼 줄 알았다. 인상을 풀지 않던 이유가 그 이유였다는 사실은 3년쯤 지나서 알았다. 풀린 줄 알았는데....인선 체코갈 때...또 다시 뚝뚝한 표정을 보고는 실망과 함께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경하에게 화가 났던 연유는 경하가 극단을 나가기 전에 자신의 스트레스를 단원들에게 심하게 표현한데서 내린 판단이 첫번재 이유이고 이후 05년 <삐에르 빠뜨랑>공연 때 '다시는 이 극단에 들어오나 보다'라는 되돌릴 수 없는 표현을 한데서 기인했다.
은진에게 화가 난 이유는....특히 오늘....어제 전화로 유학준비에 대한 자료 체크에 대해 서두르지 말라고 지적했건만....갑자기 시간이 급하다고 하면...어떻허나.....체크하고 일주일이나 이주일 후에 해결할려고 했어야지. 한달 후라면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중요한 건 수레무대가 이사 중이고 여전히 정리할 게 많아 바쁘다. 딴 걸 멈추고 해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쁜 일정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수레무대 상황은 더 바쁘니까.
감정을 드러낸다. 그게 읽히면 참 기분 나쁘다. 하지만 참곤 한다.
문제는 다른 이의 감정을 읽었을 때 은진은 참지 못한다.
그게 기분 나쁘다.
은진 니가 참지 못하는 것 처럼 나도 참기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해라. 이제는....
재욱에게 화가 난 이유는
혹여나 극단을 그만 둘 생각이었다면....결코 <파스 릴레이> 캐스팅을 받지 말아어야 했고......나중에 내린 판단었다면.....자신의 몫에 대해 책임을 져야했다.
아스테지 <어린왕자> 조명으로서의 책임을 마지막까지 졌어야했다. 하지만 못졌다. 동곤의 지시를 따랐어야 했다.
동곤과 재욱의 문제가 아니라 은진 재욱의 태도와 수레무대 전체와의 문제임을 인식했어야 했다.
화가 많이 난다. 설명을 하면 풀리기도 하지만...반복되는 게 지겹다.
남의 문제점만큼 자신도 문제가 없는지 반드시 체크해 보길 바란다. 참 긴 인생인데......
혹여나 이 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반박해주면
그에 대한 답변을 줄 수 있다. 또 내 잘못도 인정할 건 인정하겠다.
그러나....위에 나열된 내용만으로 따진다면
그 동안 있었던 사실들을 다 체크해서 올릴 수도 있다.
상처받은 많은 사실들을 잊고 싶은데.....화가 풀리지 않는다. 점점.
2001/09/14 06시32분1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