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대지원 결과가 난 것 같다. 수레무대는 2년 연속 신청했지만 여전히 받지 못했다. 뭐 그리 실망스럽지만은 않다.
자체 프로그램만으로도 극단을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작품에 집중 투자가 힘들어진다든지, 단원들의 심리적 요소에 대한 점 등에 작으나마 우려를 가져볼 따름이다.
서울시 무대지원은 받지 못했지만 2개월 전에 결과가 난 서울시 문예진흥기금 지원에는 선정되었다. 600만원이다. 현실적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잘 활용해보려 한다. 최소한 지원은 받았으니 누군가가 심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관람을 할 것이고, 좋은 결과를 보여 주면 내년엔 지원받기 유리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요 근래 세미나나 포럼을 통해 지원제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다.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대부분 유사했고 그 해결책은 다양했다. “지원금이 주로 프로젝트 지원에 한정되어 있다” “소액다건이다” 이 두 가지가 가장 많은 지적이었다. “선택과 집중” 지원안이 여러 번 돌출되었고, 지원의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 극장지원, 극단지원, 스텝지원 등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또한 대두된 사안들이다.
난 개인적으로 극단지원에 관심이 많다. 프랑스의 태양극단의 예가 국내에서도 언젠가 이뤄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한해 반짝 지원이 아니라 2~3년 정도의 집중적 지원에 기대를 걸어본다. 10년 후래도 좋다 그런 경우가 생기기 바라고 반드시 생겨야 된다고 확신한다.
지원의 목표가 무엇인지 항상 생각해 본다. 단지 극단들이 버티게 만들려는 의미는 아닐 것 같은데, 결과는 늘 그렇다. 많이 받는 극단은 책임을 못 지고, 적게 받은 극단은 “그 돈으로 어떻게 해?” 이런 식이다. 많이 받았다 치더라도 3~4개월 연습해서 세계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겠는가? 만일 10년 이상을 준비해 온 호흡이 착착 맞는 그런 극단의 경우라면 몰라도 프로젝트에 맞춰 배우들과 스텝들을 급조해서 제작하는 경우가 현실이기에 뭐 그리 큰 기대를 걸 수는 없다. 적은 지원금일지라도 오랜 시간 준비가 있던 극단의 경우라면 연기자의 역량이나 스텝의 기량이 좀 떨어져도 호흡이나 앙상블로 가능치는 보여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제도라는 게 그리 쉽게 변화될 건 아닐지라도 문제가 반복되면 구체적으로 고민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고민에서 머물고 만다. 난 변화를 꿈꾸지만 개혁적인 성향은 아니다. 기다리는데 익숙해져 있다. 기다리는 사이에 준비에 준비를 거듭할 뿐이다. 이때 가장 안타까운 점은 연기자들의 인내이다. 여느 극단들과 마찬가지로 단원들은 천년만년 기다리지를 못한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몇 년 안에 좋은 결과가 나길 바란다. 조급해 진다. 그럴수록 늦어진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보다. 때문에 지원을 기다리곤 한다. 최소한 대학로 공연을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로 공연은 단원들에게 항상 기대감을 갖게 한다. 연기자 자신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의 반대를 조금은 완화시킬 수 있다. 뭐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20년 넘게 연극만을 생각하고 산 나의 삶에도 위기감은 엄습해 온다. 체력 때문이다. 공부량은 적잖게 축적되었지만 국내 현실이 다 그렇듯이 기획하랴 연출하랴 돈빌리랴 좋은 단원들 확보하기 위한 강의들까지 해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전에는 의식이나 관점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면 30년이고 40년이고 무슨 문제가 있어! 큰소리 쳤지만, 좋은 작품은 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때문에 지원금에 기대를 갖기 시작했고, 변화를 꿈꾸고 있다. 선배들의 푸념인 “우리 때는 돈 없이도 다 잘했어!” 그 시대는 이미 갔다. 영화가 산업으로 탈바꿈했고, 애니메이션이나 컴퓨터가 이토록 발전한 시대에서 연극이 살 길은 현실적 객관적 잣대의 국가적 지원 밖에는 없다고 확신한다.
2003년 2월 22일 AM 06:35
2003/02/22 06시51분3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