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2/18 종합검진

관리자 0 2019-06-12 21:02:21 47

글 주소 :

 

일요일 잔뜩 굶고 월요일 아침 의정부에 있는 한 작은 병원에서 이쁜 여의사와 환담을 나누며 종합검진을 받았다.

 

동국대 연영과 동기생인 차태호의 아내 은혜씨가 의사선생님이시다. 작년 병원을 오픈했다는 소릴 듣고 한번 가서 종합검진 받아야지 받아야지 하다가 반년이 지나서야 실행에 옮긴다.

 

지방간이 많고...폐가 꺼멓고...뭐 이런저런 예상했던 지적들을 받는다. 문제가 심각한 건 무릎 연골이었다. 4년전 다리가 부러지는 큰 사고 후 여전히 제거하지 않은 오른 무릎의 금속성에 대한 휴유증인가? 오른 무릎 연골이 거의 바닥이다. 원래 엑스레이를 찍으면 뼈 사이가 연골로 인해 비어 있어야 하는데 내 무릎뼈 사진은 붙어 있다.

 

3주전 무릎이 마비되는 한 사건을 겪고 조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게다가 기력이 엄청 떨어진 요 한달....그저 체력으로 고집스럽게 버텨왔던 나의 연극인생에 적신호가 떨어진 셈이다.

 

아프다는 건 여러모로 이득이 있다. 우선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만든다. 나이를 인식하게 만든다. 간호사 언니의 주사바늘을 다시금 체험할 수 있다. 머 등등

 

나는 확신한다. 나의 인식이 나이먹을 확률은 결코 없음을. 20년 전에 떠든 소리들을 행동에 옮기는 과정이며 그 과정은 현재의 삶이다. 합숙을 실행하고 배우의 훈련이 중요하며 나 역시 언제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아울러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지금 겪고 있는 외형적 나이먹음에 잠시 주춤한다. 새치가 잔뜩 늘고 흰색 수염도 적지 않다. 허리에 살이 마구 붙기 시작하고 체력은 정녕 예전같지 않다. 예상은 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인정한다.

 

수술 후에 헬스를 다니든 수영을 하든 해서 무게도 줄이고 식사 일정하게 하고 담배 줄이고 술 줄이고 머 그런 결심을 해 본다. 결코 지켜지지 않을 것 같은 결심들을 해 본다.

 

이미 내 몸은 나 하나의 것이 아님을 느낀다. 수레무대 살림은 어느새 한달 1000만원의 지출을 감수해야 하고 20여명의 단원들은 이 삶의 의미에 잔뜩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난 연출가이기 이전에 선생이고 동시에 기획자이다. 아직은 10년 더 가야 형태가 잡힐 것이란 걸 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더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이 과정이 텍스트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로의 조악함이 반복되지 않는다. 난 그렇게 믿는다.

 

오늘 대학로에서 있었던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모임에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김정숙 대표와 잠시 사적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떤 단원들도 대표를 이해할 수는 없다." 머 그런 결론을 내리며 회의에 임했다.

 

시종일관 뇌리를 맴돈다. "....대표를 이해할 수는 없다...." 난 수레무대 단원들은 반드시 대표의 삶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반복해서 되내인다. 이들 중에 몇은 나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랬을 때 동지가 되어주어야 하고 짐을 함께 나눠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약간 힘이 들긴 하지만 이 과정은 가장 바람직한 형태임을 많은 지인들이 인정하지 않는가? "대단하다" "어떻게 버티냐?" "그 극단이 바로 당신 극단입니까?" 머 등등의 덕담 속에서 난 이 과정에 확신을 더 한다.

 

아프니깐 말이 더 많아지는군..........

 

택도 없는 결심이지만 수술도 받고 담배도 줄이고 술도 자제하고 운동도 반드시 하리란 현재의 결심을 위해 이 글을 게시판에 올려 두려 한다.

 

2003318일 새벽 625

 

2003/02/18 062819초 

목록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수레무대 일지 목록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75

2003/10/27 누군가는 해야만 될 작업들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5 HIT
74

2003/10/16 2003.10 ~ 2004.2 공연일정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5 HIT
73

2003/10/11 너무나 바쁜 교수님들 너무나 바쁜 학생들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8 HIT
72

2003/09/27 <꼬메디아>를 무대에 올리면서....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3 HIT
71

2003/06/10 2003년 공연일정 (6월~10월)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5 HIT
70

2003/06/03 <오즈> KAIST 공연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4 HIT
69

2003/04/30 대본 작업을 마치며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7 HIT
68

2003/03/23 역시 KAIST 관객들!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8 HIT
67

2003/03/03 2003 상반기 공연 일정 II (재정리)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39 HIT
66

2003/03/02 보수와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들은...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5 HIT
65

2003/02/22 지원금, 변화를 꿈꾸며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7 HIT
64

2003/02/20 <어린왕자> 연습 재개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7 HIT
63

2003/02/18 종합검진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8 HIT
62

2003/01/03 평론가의 관점, 작업인의 관점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9 HIT
61

2002/12/31 2003년 수레무대 단원들에게 0

관리자 2019-06-12 0

관리자 2019-06-12 46 HIT

인천 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시리미로207번길 8-11
23039
wagonstage92@naver.com
010 - 7635 - 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