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넘어 아침으로 접어 드는 이 시각에 수레무대 단원들은 석고와 찰흙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어제 새벽엔 임도완 선생의 꼬메디아 델 아르떼의 유형인물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엔 꼬메디아 델 아르떼의 유형인물 가면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 작업은 거의 20년부터 상상해 왔던 일이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시작된 수레무대 창단 당시부터 하나씩 준비해 오다 드디어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프랑스 르꼭의 고급스러운 수업과정을 이수하고 귀국한 임도완 선생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고, 일천하지만 극단이 10주년을 맞이하기에 관계된 몇몇 선수들의 참여가 이 일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태리에서 무대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전경란 덕분에 무대나 의상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고, 이번에 합류한 중대 조소과 석사과정을 마친 홍장오의 의미부여가 탄력을 붙힌다.
찰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석고로 본을 뜨고 손질하고 종이 붙히고 칠을 하면 가면이 형태를 드러낼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10년동안 리듬에 대한 연구는 어지간히 진행되었다. 본격적인 꼬메디아의 흉내낼 준비도 갖추어질 것 같다. 다시 10년이 걸릴 일을 무식하게 벌려보는 셈이다.
항간의 수레무대에 대한 평들 속에 '현 시대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주제성, 사회성 등등'이 제기되고 있다.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될 지적들이지만 지금 하면 서두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현 우리네 연극계가 일회성 작품들에 머무는 원인을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Art란 Techigue의 극치를 일컫는 말이고, 예술이란 기술의 극치, 예능이란 능력의 극치를 뜻하는 말들이다. 10년이면 된다라는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10년이 걸릴 수도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 30년이 걸린다 해도 연극은 예술의 경지에서 빛을 바랄 수 있다고 믿는다.
관객들은 그 과정을 보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는 오늘날의 대학로 현실에서 나에게 감동은 정녕 미미할 따름이다. 오늘의 이야기만이 중요하다면 고전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역사가 지나간 궤적을 통해 현실에 적용되듯이 연극 역시 그 궤적을 꿰뚫는 일에 게으름을 가져서는 아니된다.
문제는 있다. 양식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어떤 그릇에 담을 것인가? 어떤 속도여야 하는가? 어떤 포인트에 힘을 줄 것인가? 과거와 현재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머 등등
숙제는 많지만 풀어야 푸는 것이지 풀려고 하는 의지 자체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요소이다. 연극은 공연을 통해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고, 공연의 특성은 일회성이며 현장성이다.
배우의 몫에 한껏 힘을 주려 한다.
가면은 장식이 아니다. 배우의 기술에 힘을 주려는 시도이다. 이것이 출발이라해도 좋다. 출발을 하는 그 자체가 이미 질문이고 시도이고 과정이다.
오랫만에 만끽해보는 수레무대 연습실의 한껏 고조된 열기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연출이.....
2002/03/23 05시35분1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