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喜劇 roman comedy
고대 로마 연극은 그리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로마의 연극사는 리비가 그리스의 희극 을 번역함으로써 시작되어 플라우투스와 데렌스의 희극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나, 그들 작품 들은 모두 그리스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플라우투스의 작품은 연극적 효과와 유머에 주 력하고 있으나, 테렌스는 보다 문학적인 플롯을 창조했다. 비록 그리스의 것을 모방한 것이 기는 하나, 로마 희극의 대사나 사고 방식을 완전히 로마식으로 바꾸었으므로 그 자체로서 유럽연극에 기여했다고 봐야 한다. 로마연극은 르네상스기의 학교연극에 영향을 끼쳤으며, 몰리에르, 골도니, 홀버그, 클라이스트 등 유럽 극작가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작품들 은 그 의상이 그리스의 것이었으므로 「파불라 팔리아타」(그리스 옷차림의 연극이라는 뜻)라 불렀고, 당시 유행하던 많은 제신들이 등장하는 희극은 「파불라 아텔라나」라 하였 다. 파불라 아텔라나가 코메디아 델아르떼의 원형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세 번째 장르인 「파불라 토가타」는 로마적인 소재를 사용했고, 로마인의 토우거를 착용했다. 이의 작가 티티누스와 아타의 글은 서너句 밖에 남아 있지 않으나 아프라니우스의 경우, 40개의 작품 제목과 4백여句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의 극장은 오케스트라가 발달한 것이 나, 로마는 처음부터 무대를 중요시했다. 현존하는 로마 극장은 모두 후기의 것으로, 무대 정면에 3개의 문이 있는데 이는 때로 3개의 집을 뜻하기도 한다. 연기장소는 곧 길이다. 로 마 희극은 국가에 의해 또는 부호들에 의해 경비가 충당되었으므로 일반에게는 무료였다. 희극 대신 차차 판토미무스가 유행, 비극 공연은 널리 퍼지지 않았으며, 한 명의 배우가 극 의 절정에 이르러 낭송하는 방식이 유행했다. 완전히 보존된 로마 비극은 세네카의 작품뿐 이지만, 그것도 완전한 작품이 아니라 암송을 위한 것이다.
演 劇 事 典
◎그리스 연극 Greek theatre
넓은 의미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서 로마 제국 발흥까지 사이에, 그리스의 아테네 등지에 서 상연된 다양한 형식의 희극과 비극을 가리키는 용어. 일반적으로는 디오니소스를 찬양 한 종교적인 축제에서 상연된, 주로 기원전 5세기의 현존하는 희곡을 가리킨다.
그리스의 극장은 최대 1만 8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큰 반원형 극장이며, 관객은 원형의 무용장 즉 오케스트라와, 스케네를 뒤로 한 길고 좁은 무대를 내려다보았다. 음악·무용·노래·집단에 의한 움직임은 수많은 관객을 이끌기에 충분했으므로, 합창대가 대단히 중요한 기능을 했다. 불행히도 텍스트의 운율 이외에 그리스 연극의 오페라적 성격에 관한 증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아이스킬로스(B. C. 525 - B. C. 456), 소포클레스(B. C. 496 - B. C. 406), 에우리피데스(B. C. 484 - B. C. 407/6)가 쓴 극은 그 십분의 일 정도밖에는 현존하지 않으며, 아리스토파네스(B. C. 448경 - B. C. 380경)의 극은 약 사분의 일만이 남아 있다. 따라서 그 비범한 문화에서 생겨난 그 작품 중에서 현존하는 부분은 매우 적다.
Bieber, M., The History of the Greek and Theatre, Oxford University Press, 1961.
Jones, J., On Aristotle and Greek Tragedy, Chatto, 1962.
Nietzsche, F. W., The Birth of Tragedy, trs. W. Kaufmann, Doubleday, 1956.
Vickers, B., Towards Greek Tragedy, Longman, 1973.
◎그리스 중기 희극 Middle Comedy
아리스토파네스의 그리스 구희극과 메난드로스(B. C. 342 - B. C. 292)의 그리스 신희극 사이의 희극의 유형을 정의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명칭. 아리스토파네스(B. C. 448경 - B. C. 380)의 후기의 극 『의회의 여인들』(B. C. 392)과 『플루토스』(B. C. 388)는 축제와 합창의 그리스 옛 희극과 새로운 개인주의적 사회 희극 사이의 과도기적인 희극의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희극 Comedy
극의 넓은 범주의 하나로 법석희극이나 소극처럼 저속한 것에서부터 풍자·패러디·벌레스크·풍습희극 그리고 비극에 가까운 블랙 코미디나 희비극까지의 광범한 범위에 걸쳐 있다.
우연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웃음과 잔혹과의 관련성에서 이오네스코가 <희극은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하더라도 희극은 보통 비극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희극 전통의 흐름은 그리스의 코모스에서 아리스토파네스(B. C. 448년경-B. C. 380년경)의 그리스 구희극, 메난드로스(B. C. 342년경-B. C. 292년경)의 그리스 신희극으로, 거기에서 프라우투스(B. C. 254년경-B. C. 184년경)나 테렌티우스(B. C. 190년경-B. C. 59년경) 의 로마 희극을 거쳐 르네상스 연극 속에서 고전극와 대중희극의 전통이 합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서 코메디아 델아르떼에서 몰리에르(1622-73)로, 그리고 18세기의 풍습희극을 거쳐서 19세기 프랑스의 소극, 20세기의 대중 연예로 영향력이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1564-1616)와 존스(1572-1637)를 거쳐서 콩그리브(1670-1720)와 셰리든(1751-1816)으로, 거기에서 감상희극이나 멜로드라마로 이어진 영향도 있다. 이와 같이 희극의 역사는 복잡한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있어서의 갖가지 전통의 합류만큼 복잡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희극의 이론은 희극이 공통적으로 지위가 낮은 보통 인간을 다루고 격조 높은 형식보다 대중적인 형식을 사용하고, 해피엔드로 끝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필립 시드니 경(1554-86)과 같은 르네상스의 이론가는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시드니는『시의 옹호』(1595)에서 희극의 목적은 악의 폭로에 있다고 하고, 〈우리 인생의 행동에서도 악의 더러움을 못 보는 사람에게도 미덕의 아름다움을 지각하기 위한 큰 대조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근대의 이론가, 특히 베르그송(1851-1941)이나 프로이트(1856-1939)는 중요한 심리학의 희극 이론을 발전시켰다. 베르그송의 〈우월 이론〉에서는 희극이 고정관념이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행동하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논하고 있다. 그래서 욕심, 자존심, 타성이나 그 밖의 악덕에 사로잡힌 등장인물을 공격한다. 〈살아 있는 것 위에 덮인 기계적인 것〉을 알아차리는 데서 웃음이 생겨난다. 슬로건에 따라서 사고하는 사람과 습관적인 동작이나 행동을 되풀이함으로써 스테레오 타입화 한 사람을 비웃으므로 희극은 인생의 편에 있다. 한편 프로이트는 〈해방 이론〉에서 농담이나 희극은 무질서한 무의식에서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희극은 인간의 고상한 자아가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까닭에 희극에서는 성, 인종적 편견, 불온한 화제가 강조된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이론은 모두 인생을 하나의 총합체로서 봐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마 이런 점에서 두 이론이 조화할 가능성이 있다. 베르그송과 프로이트, 두 사람에 의하면 희극은 건강의 원천이다.
희극에 관한 세 번째 이론으로, 희극과 웃음은 두 가지 논리가 대립했을 때 일어난다고 말한 칸트(1724-1804)의 〈부조화〉 이론을 들 수 있다. 웃음이란 〈긴장되었던 기대감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데서 생기는 효과〉이다. 이 세 가지 이론들 중 어느 것인가가 희극의 어떠한 형식에도 언제나 해당된다.
희극을 연행하는 것은 어렵다. 탁월한 표현력, 큐를 신속하게 보내는 능력, 몸짓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과 고도의 프로 의식이 필요하다. 희극의 관객은 그 표현 방법에 주의를 쏟는다. 희극적 상황의 인공성과 등장인물의 유형화로 인해 관객은 거리를 두고 보기 때문에 극의 긴장의 대부분은 (줄타기를 보는 것처럼) 연기술을 알아차리는 데서 생겨난다. 어떠한 대사 실수나 잘못도 극의 긴장을 망쳐 버린다. 따라서 희극에서는 민첩한 반응을 요구하고 둔감한 반응을 조롱한다. 실제로 희극의 등장인물 중에 반응이 빠른 자와 둔한 자의 대조는 극단적으로 표현된다. 희극은 대조의 효과로 성립한다.
그리고 정치극의 작가도 희극을 크게 이용해 왔다. 이화 효과란 <희극에서 잘 알려져 있는, 오래된 예술 기법>이라고 브레히트는 말한다. 만약 희극의 특색이 <거리 두기>라면, 희극은 관객에게 생각게 하고 이성적 판단을 내리게 할 수 있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옛날의 대중희극에서는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끼리 결합하고, 근면한 사람은 재산을 이어받고 게으른 사람은 응당 그 결과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부분의 희극은 이 규정에 따르고 있음에 지나지 않으나, 더욱 개선하여 활용할 수도 있다. 희극의 반권위주의와 인간 전체에 대한 관심, 그리고 논리의 모순을 폭로하는 특색은 사회적 부정에 대한 강한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희극의 무질서적 경향을 항상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웃음; 풍자) 트레버 그리피스의 극 『코미디언』(1974)은 희극과 관객의 다양한 관계를 구체화하고 분석하고 있다.
Bergson, H., Laughter, Garden City, NY, Doubleday, 1956.
Freud, S., Jokes and their Relation to the Unconscious, Pelican Books, 1976.
Lauter, P., (ed.), Theories of Comedy, Doubleday, 1964
Mikail, E. H., Comedy and Tragedy: A Bibliography of Critical Studies, Whiston, NY, 1972.
◎희비극 Tragi-comedy
비극적인 가락·분위기와 희극적인 패턴들이 혼재하는 장르. 고전극에서는 이 희비극은 인정되어 있지 않았다. 키케로(B. C. 106 - B. C. 43)는 대립하는 요소를 혼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주장했다. 플라톤(B. C. 428/7 - B. C. 348/7)도 예술가는 이 양쪽 장르에서 다 성공할 수는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하기야 소크라테스는 『향연』(B. C. 384) 마지막에서 비극과 희극은 서로 관련이 있고, 한쪽을 쓰는 능력에는 다른 한쪽을 쓰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논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장르를 단일화하는 것을 지지했다.
시대가 더욱 내려오자 희극적인 요소를 진지한 요소와 혼재시키게 되었고, 영국 웨이크필드 사이클극의 『두 번째 목자의 극』에서처럼 종교극에도 민속적 요소가 첨가되었다. 16세기에 와서는 르네상스의 작가들이 장르가 혼재한 작품들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희비극적인 전원극 『충실한 양치기』(1590)의 작가인 배티스타 구아리니(1538-1612)는 키케로나 플라톤의 견해와 같은 고전적 견해에 다음과 같이 반대의 뜻을 내세웠다. 현실에서는 희극과 비극이 섞여 있다. 그런데도 어째서 예술에서는 그렇지 않는가? 이러한 견해의 현명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의해서 증명되어 있다.
희비극에는 희극의 유쾌함도 비극의 강렬한 심각성도 없다. 가슴 아픈 제재에 흔히 냉소적인 태도가 취해져 있다. 희극적인 요소와 심각성이 교대로 나타나고, 리얼리즘 형식과 웃음이 혼재하는 데 대해 관객은 동요한다. 셰익스피어의 문제극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1602)·『끝이 좋으면 모두 좋아』(1603-4)·『법에는 법으로』(1604)는 구조상으로는 서로 다르지만 이따금 희비극이라 일컬어진다. 체호프(1860-1904)의 극이나 많은 부조리극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극들은 형식면에서 서로 다르며 셰익스피어 극과도 다르다. 이것은 희비극의 정의가 특정한 극 구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상이라는 어정쩡한 척도에 의하기 때문이다.(→블랙 코미디; 비극; 희극; 웃음; 사티로스극)
Styan, J. L., The Dark Comedy: the development of modern tragi- comed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