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

관리자 0 2019-05-13 22:20:40 190 Gre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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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희랍의 연극

(8) 희극의 발생·전개·구분

그리스 희극은 그리스 비극의 그것과 함께 酒神 디오니소스 제례에 기원하여 있다.

그러나 비극과는 달리 그 발생이나 그 기원에 관한 역사적 문헌이나 작품들이 극히 적으며, 따라서 그 형식이나 내용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전혀 없다. 우리가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아리스토파네스의 현전하는 작품 11편 뿐이다.

비극이 지금까지 32편의 작품을 전하는데 비한다면 그 분량은 불과 3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또 작자의 연대로 보더라도 그리스비극의 전성기인 3대 비극시인 중의 초기의 작가 아이스퀼러스 보다는 꼭 70년 늦게 나서 이미 그가 소년시대에는 비극이 고도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채 고도의 지위에 올라있었던 때였다.

그밖에 역사적 문헌과 이론 등에도 희극에 관하여는 별로 특이한 것이라고는 없다. 그 발생과 기원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의 詩學(Peri Poietikes)에 조차 희극에 관한 설명은 예외로 취급되어 있으니, 즉 비극을 중심으로 그와 비교설명하는 데에서 약간씩 논급되고 있을 뿐이다.

다만, 희극의 변 와 발달경로에 관한 그의 설명은 詩學5장에 간단히 지적되어 있다.

"비극이 거쳐온 계속적인 변 과 그 당사자는 명확하다. 그러나 희극의 그것은 알 수 없다. 희극은 그 초기에 있어서는 성의를 가지고 취급되지 않고, 따라서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희극의 작가에게 집정관이 국가재정에서 합창단을 배당한 것은 훨씬 이후의 일로써, 그때까지는 임의의 지원자에 의하여 성립되고 있었을 뿐이다.

그후 희극이 일정한 형식을 구유한 시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현금까지 전하는 작가 이름이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보는 바로는 희극은 그 발생경로가 명확하지 않음은 물론, 특히 아테네의 국가적 재전인 디오니소스의 제례에서 일부분으로 인정을 받게된 기원전 486년 이전의 희극은 당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국가재전의 일부분으로 공인된 이후의 희극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이 그 자료가 되어 있으나, 그러면 그 이전의 발생적인 형태는 어떠했던가?

여기에 대해서는 무엇보다도 어원의 고증과 해석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희극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Komoidia行列을 뜻하는 Komos노래란 말의 Oide의 결합어로서, 희극이 행렬의 노래Komos +Oide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異說이 전혀 없는 것인 아니다.

그중 一說Komoidia잔다는 말의 KomaOide의 결합어라고 하여 희극이 잠자는 노래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다.

이것은 아티카 부근촌락의 주민들이 얼굴에 포도주의 찌꺼기를 바른 채 아티카인들이 잠들고 있는 밤에 나타나 도시인들에게서 모욕을 당한 아티카인들을 놀려준 노래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이런 의 얘기는 나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은 아카르나이의 사람들이나 구름에서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설은 포도주의 찌꺼기를 칠했다는 분식(扮飾)과 야간의 노래에서 그 발생적인 형태를 看取할 수 있다는 것 외에 다른 가치는 없는 것이다.

또 한가지 설은 아리스토텔레서의 詩學3장에 의한 것으로서 KomoidiaKomo의 복수형인 Komai 村落Oide의 종합어이며, 따라서 희극은 촌락제에서 연원한 것이라는 설이다.

이 설은 희극의 기원과 발생을 설명하는 데에도 대단히 중요한 설로서 이에 의하면 희극은 도시에서 좀 떨어진 촌락에서 일년의 수확을 얻어 이를 신에게 바치는 추수감사제와, 봄에 식물의 생성을 구가하던 놀이에서 온 것으로 짐작해 볼 수가 있다.

그 상세한 내용은 전술한 디오니소스 제례의 이동과 변천에서 설명했으므로 그 중복을 피하여 여기서는 미진한 점만을 들어 설명하려 한다.

고대 그리스의 각 지방에 산재하던 이러한 전래적인 놀이는 디오니소스 의식이 부가되어 도시의 비극으로 발전해 갔지만, 한편 촌락에 그대로 잔류해 있던 이 놀이는 디오니소스적인 그 분방(奔放)과 신속(迅速)을 가미한 채 독자적인 면모를 유지하여 그대로 촌락에 고정되었다.

이러한 것을 좀더 보충하기 위해서는 먼저 行列이란 말의 Komos를 좀더 명확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Komos의 의미는 글자 그대로 주신 디오니소스를 위한 행렬의 뜻이었다. 즉 한해의 수확을 끝마친 촌락의 디오니소스에서 부락민들은 포도주의 잔치를 벌려 한바탕 떠든 다음, 다시 잡소리와 함께 의 행렬을 지어 마을을 돌았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乞粒(걸립)행렬과 같았지만, 그들은 供物걸궁(乞窮)하지는 않고 다만 전술한 바와 같이 포도주의 찌꺼기로 분장한 채 방가(放歌)하며 다녔을 뿐이다. Komoidia란 결국 이 행렬의 노래에서 나온 말인 것이며, 그 노래란 비극의 경우로 본다면 디튀람보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2세기경에 살았던 아테나이오스에 의하면 "남자생식기를 든 행렬 운운....."이라 하여 있으나 이는 아직 희극이전의, 말하자면 원시 생식기숭배 사상에서 볼 수 있던 행사라 하겠다.

아테네 부근촌락의 이런 보잘 것 없는 행렬의 노래외에도 이전의 그들의 식민지였던 시게리아섬에는 완전한 예술적 형식을 갖춘 고대희극과 에피카르모스라는 작자까지도 있었다.

이 에피카르모스는 이미 기원전 5세기에 신화와 일상생활에서 취재한 희극을 그리스 방언으로 쓰고 있었다니, 이것이 후일 아티카 희극에 준 영향이 컸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도 있지만, 그에 관한 자료를 구할 도리가 없고, 또 당시의 희극은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제전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있었으니 그에 관해 알아 볼 길은 전혀 없다 하겠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희극이 정식으로 국가의 공인을 받아 디오니소스 제전에 참가할 수 있게된 것은 기원전 486년이었으며, 이때의 희극은 이미 그들의 원시적인 행렬의 노래와는 달라 비록 비극처럼 서사시적인 전설이나 신화에서 취재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미 현실에서 소재를 구하여 고도의 문학적 단계에까지 발전하고 있었다.

희극의 최초의 경연자는 키오니데스였으며, 이 경연자는 처음 3인에서 5인으로, 다시 7인으로 증가되어 갓다. 그들은 비극의 경연에서와는 달리 각기 1편씩의 작품을 내어놓긴 했지만, 다른 모든 것은 비극에 준했으며, 또한 그 형식은 비극으로 하여금 급진적인 발달이 가능했던 것이나, 합창대의 수는 24, 그리고 배우의 제한은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의 희극을 그 시대에 따라 고희극, 중기희극, 신희극의 셋으로 갈라 볼 수 있다.

 

고희극(Komoidia Archaia)이란 기원전 5세기의 아티카 희극을 말한다. 당시의 희극시인으로는 전기 키오니데스(Chionides)와 그리스 최대의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를 비롯하여, 기원전 423년에 그의 작품피티네(Pytine)를 가지고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을 물리쳐 승리한 크라티노스, 기원전 450년에 처음으로 개인 공격적인 작품을 가지고 우승한 크라테스와 마그네스, 또 유포리스와 프리니코스, 페레크라테스 및 플라톤 등의 많은 작가가 있지만 아리스토파네스를 제외한 그들의 작품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중기 및 신희극은 시대로 보아 페로폰네소스 전쟁 다음으로부터 기원전 4세기 경까지의 것으로서 고희극이 주제로 하고 있던 시사문제를 떠나 일반적, 유형적인 풍속과 습성을 취급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을 신희극이라 부르고, 여기에 이르는 동안의 그 과도기, 즉 기원전 400년에서 330년경까지의 희극은 중기 아티카 희극이라 부른다.

이때의 작가로는 역시 단편(斷片)으로 밖에 작품이 남아있지 않는 알렉시스, 안티파네스와 도리아의 아낙산드리데스들이 있고 신희극의 작가로는 헤레니즘시대의 초기를 장식한 아렉시스의 조카 메난도로스가 있다. 그의 작품은 1905년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 발견된 에피트레폰테스, 사미아, 페리케이로메네헤로스등의 斷片만이 전할 뿐이다.

그외에 작가로서 피레몬, 디피로스 등의 대가가 있었다 하나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작품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시정의 다반사적인 사건들을 극화했다는 것뿐 달리 그들의 활동을 알 수 는 없는 것 같다.

 

(9)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아테네가 낳은 최대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 근교의 퀴다테나이에서 피리포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이나 사망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대개 기원전 452-445년에 태어나 기원전 380년경에 죽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어려서부터 극작가의 조수로서 희극, 비극, 서사, 서정시며, 무대장치는 물론, 일반지식을 습득하고 기원전 427년에 그의 최초의 극작을 상연했다. 그로부터 약 40여년 동안 작가에 종사하면서 44편의 희극을 썼다고 하나 현재까지 완전히 남은 작품은 불과 11. 그 외에 근 1000편에 달하는 斷片이 전하고 있다.

아라로스와, 조부의 이름을 가진 피리포스라는 두 아들도 역시 희극작가였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본 그의 성격은 귀족취미에 젖은 대단한 보수주의자로서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싫어하며 급진적인 선동정치가와 사상가들을 멸시했었다. 그의 가혹한 풍자정신은 정의와 애국심에 불타고, 보다 나은 도덕적 세계로의 끊임없는 지향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이러한 정신에 위배되는 온갖 모순과 撞着(당착), 착오와 과실에 대해서는 그의 독특한 풍자와 諧謔(해학), 외담(猥談)과 조롱 및 야유로 희화화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리스인의 bomolochia라고 하는 만담적인 기지와, para prosdokian이라고 하는 기상천외의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는 인간의 강점, 성적생활의 결함, 사회생활의 군중심리를 깊이 통찰하여, 개인적 정치가의 야심적인 이기주의, 선동가의 횡포, 무기력한 청년의 비굴한 정욕, 하위계급의 교활성, 그리고 예언자와 祭官(제관) 등의 사술과 무정견(無定見) 등을 지적해 내어 관객의 조소로 하여금 이를 반성시키게 했다.

이와 같이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그 재료와 형식에 있어서 희랍의 희극사상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 현존 11편의 작품만으로도 그의 사상 등에 관한 특징은 충분히 추출해 볼 수가 있다.

그의 작품구성은 대략 비극과 비슷하여, 프로로그와 파로도스를 가지고 얼마 되지 않는 에피소디온과 파라바시스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엑소도스로 되어 있다.

여기서 그의 현존 11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희극적 정신과 극작의 의도를 살펴보자.

현존작중 최고(最古)의 것인 아카르나이의 사람들은 기원전 425년에 상연된 작품으로서, 이는 페로폰네소스 전쟁으로 타격을 받은 아카르나이에 사는 노인들로 합창단을 구성하고 있다. 그들은 선동정치가 라마코스에게서 농락을 당하고 있어, 주인공인 농민 디카이오포리스는 몰래 스파르타와 화의를 체결하여 라마코스의 압제를 벗어나려 했다. 이를 안 라마코스가 극심한 박해를 가하자 마침내 합창단은 주인공과 가세하여 라마코스를 배척하고, 그들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된다는 내용으로서 작자의 평화론이 제시된 작품이다.

그리고 기사는 기원전 424년에 상연된 것으로서, 이것 역시 선동정치가인 크레온을 비난한 인신공격적인 작품이다. 기원전 425년 사프크레리아에서의 대승으로 일확 정권을 획득한 선동정치가 크레온과 그리고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니기아스와 데모스테네스를 아테네 시민의 노예에 견주어 쓴 작품으로, 이는 당시 아테네인들의 사리에만 밝고 무자각한 결점 때문에 자연 선동정치가가 발호하게 된다는 것을 통박(痛駁)하고 있다. 크레온의 도괴(倒壞)를 원조(援助)하는 기사들의 합창단에서 제명을 취한 이 작품은 비록 고발정신은 훌륭하다 하더라도 너무나 인신공격에만 치중하고 있어 문학작품으로서는 실패작이다.

당대의 철학사상을 제재로 한 제3의 작품인 구름은 기원전 423년에 상연된 것으로서, 소피스트와 자연과학을 야유하고, 또 신식교육을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의 대표자로 등장시킨 이 작품은 주인공인 시골노인이 그의 빌린 돈을 주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대철인(大哲人) 소크라테스의 학교인 사고점(思考店)에 입학하나 기억력이 나빠 낙제를 하자, 대신 그의 아들을 입학시킨다. 졸업한 아들은 신식의 궤변술로 많은 채권자들을 물리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도 좋다는 궤변을 설명했기 때문에 그 노인은 화가나서 思考店에 불을 질러버린 이야기가 그 내용으로 되어있어, 당시의 많은 신경향의 사상을 소크라테스에게 비유하고 있지만, 이는 반드시 소크라테스 개인에 대한 풍자만은 아니었다.

이보다 일년후인 기원전 422년에는 사람을 괴롭히는 법률을 벌의 침()에 비유하여 이란 작품을 내어 놓았는데, 이는 당시 아테네인들의 광적인 재판취미와 무지하고 무정견(無定見)한 재판관 및 정객(政客)을 통쾌하게 풍자한 것이다.

그 익년인 기원전 421년의 평화란 작품은, 아테네의 농부 트뤼가이오스가 평화의 신을 찾아 거대한 갑충(甲蟲)을 타고 천상에 있는 올림프스에 비행하여, 지금까지 학대를 받고 있던 평화의 여신을 지상으로 구출해 오는 이야기인데, 이는 시인의 상상력과 기지에 차있는 실로 통쾌한 작품이다.

는 기원전 414년에 상연된 것으로서, 이 작품에 나오는 합창단은 모두 새들이며, 그들은 아테네의 혼란상을 피하여 새의 나라에 가서 이상국을 건설하고 신의 지 권을 빼앗아 대행한다. 꿈많은 새의 나라에 가서 인간세상을 내려다 보며 인간의 생활을 야유하긴 하지만, 새의 나라도 역시 인간세계와 다름이 없다는 인간으로서의 서글픈 꿈을 멋진 서정시로 읊은 것으로서, 이는 곧 인간세계의 모순을 조롱한 것이다.

그후 기원전 411년에 상연된 뤼시스트라테란 작품의 그 제명(題名)평화건설의 여인이란 뜻을 가진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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