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디아 델라르테(p.48∼51)
이러한 극작가 부존현상에서 탄생한 것이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라고 할 수 있다. 즉 코메디아는 극작가 중심의 연극이 아니라 배우 중심의 연극인 것이다. 코메디아 델라르테는 귀족이나 학자들의 연극이었던 코메디아 에루디타(Commedia Erudita)와 달리 일반 대중의 산물이라고 해서 민중즉흥극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그 명칭도 18세기경에 와서야 공인되었는데 오랜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기에 대부분의 연극이 아마츄어에 의해 공연된데 비해 이 연극은 '직업적' 즉 arte(직업적 또는 예술적)의 경지에 있다는 찬사에서 그런 명칭이 불게 되었다. 이 즉흥적 희극은 그후 서구희극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희극작가는 물론 연기자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원천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실한 것을 모른다. 1550년 이후에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을 알 따름이다. 로마시대의 이른바 아텔란(Atellan) 소극이 중세에 내려와서도 사라지지 않고 유랑연극인들에 의해 주로 시골에서 공연되었는데, 이것이 모체가 된다는 추측도 있다. 또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서방으로 피해 온 비잔틴의 마임 배우들이 시작한 것이라는 설도 있으며, 어떤 학자는 플라우투스와 테렌스의 희극을 무언극화한 일부 배우들에 의해 개발되었다고도 한다.
코메디아 델라르테는 우선 배우 위주의 연극이며, 희곡 대사에 따라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 연기로 표현하며 또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유사희극적 인물(stock characers)이 등장하며, 어떠한 장소 조건에도 구애됨이 없는 적응성 있는 연극이라는 것이 그 특징이다.
배우가 필요한 것은 희곡도 장치도 아니고 상상력에 의해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그의 신체뿐이다. 희곡작품 대신 그들은 한 이야기의 요점을 적은 시나리오를 사용했다. 전설적인 설화, 고담중에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부분을 따서 정리한 식순을 적은 종이조각의 구실 정도밖에 못하는 시나리오가 있을 뿐이다. 때에 따라서는 시사적인 사건도 즉흥적으로 표현된다. 장소와 관객의 질 또는 분위기에 따라 내용은 즉석에서 변할 수도 있다. 시중에서 도는 시골에서 임시 가무대를 만들기도 했고, 때에 따라서는 본격적인 실내국장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기민하고 재치있는 즉흥극이었다. 대사도 분위기에 따라 전체 내용과 종말에 지장이 없는 한 출연 배우들에 의해 마음대로 바뀔 수 있었다. 배우들은 대개 자기가 특기로 하는 역을 줄곧 되풀이하여 맡는다. 그 인물도 일반이 쉽게 알 수 있는 유사적 인물이었다. 이들은 가면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무대에 나오면 관객은 그 모습을 보고 어떠한 인물이며 어떤 성격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게 된다. 극단이 많았지만 인물 설정은 죄다 유사희극적 인물이어서 별 차이가 없었다. 이 유흥극은 사랑의 이야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항상 젊은 남녀가 등장하는데, 이들 주인공은 가면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등장 인물들이 있지만 특히 카피타노(Capitano), 판탈로네(Pantalone) 그리고 도토레(Dottore)가 민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군인인 카피타노는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비겁한 인물인데, 모든 여인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행동을 하는 허풍선이다. 판탈로네는 연노(年老)한 상인이며 옛 고사며 격언을 잘 구사하고 젊은 남자로 변장을 하고 젊은 여인을 유혹하기도 한다. 도토레는 도사(道士)연하는 인물로 법률박사로 자처하며 매부리코에 수염을 붙이고 나오는데 똑똑한 체하면서도 속임수를 당하는 수가 많다. 이 연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미(Zammi)라고 불리는 하인역이다. 재치있는 행동으로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주인을 돕는 역인데, 후에 자미는 하를레퀸(Harlequin) 또는 아를레치노(Arlecchino) 등의 인물로 분파된다.
이외에도 스카라무치(Scaramouche)나 플시넬라(Pulcinella) 같은 흥미있는 인물도 등장한다.
극단은 대게 12명으로 구성되었으며 7,8명은 남자이고 3,4명은 여자 단원이었다. 비교적 돈이 들지 않는 공연을 했지만 소요되는 제작비는 단원 공동으로 마련했고, 이익은 고루 나누어 갖는 주식형 운영을 했다. 이들은 연중 지방에 순회공연을 하였다. 물론 단장이 있었다. 코메디아 델라르테는 1550년 이후 약 100년간 가장 활발한 공연을 하였는데, 이탈리아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의 각 도시로 순회할 정도로 유명하였다. 이러한 극단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각처를 순회하며 당지(當地)의 극작가들과 연기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몰리에르(Moliere)의 「수전노」에 나오는 알파곤(Harpagon)은 판탈로네의 변신이며, 로시니(Rossini)의 「세빌랴의 이발사」(The Barber of Seville), 무짜르트(Mozart)의 「피가로의 결혼」(The Marriage of Figaro) 등에 나오는 인물들도 이 코메디아의 유사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셰익스피어의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 「실수연발」(The Comedy of Errors) 그리고 「말괄량이 다루기」(The Taming of the Shrew) 등의 등장 인물은 물론, 훗날의 이탈리아의 희극작가 골도니(Goldoni) 등의 인물도 코메디아의 유사희극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수많은 코메디아 델라르테극단이 전국을 누빈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극단 이름이 특이한 것이 눈에 띈다. 가장 유명한 극단으로 알려진 극단 질투(Gelosi)를 비롯, 진실(Fedeli), 희망(Desiosi), 자신(Confidenti), 영감(Accesi) 등 그 명칭이 인상적이다. -
코메디아 델라르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산물이며 일반 민중에게 가장 가까웠던 형태의 연극이지만, 그러나 이탈리아의 연극계 전체에는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전통적인 의미의 연극을 계승 발전시키고 극작가를 배출하는데 있어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연극은 오히려 이탈리아 밖의 여러 나라 연극을 자극하여 각국에 자기네의 실정 내에서 코메디아의 특징을 흡수 소화하여 특수한 연극을 낳아, 오늘날 알 수 있듯이 스페인의 연극 황금시대, 엘리자베스 시대의 찬란한 연극시대를 도래케 하였다. 그러나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처럼 다양성 있는 연극 현상을 자아낸 시대도 없었다. 고전모방극이라고 할 수 있는 코메디아 에루디타, 인터메치, 전원극, 오페라, 본격적인 실내극장, 원근법 무대장치, 특수한 무대 효과기구의 개발, 그리고 코메디아 델라르테 등 수많은 연극 현상을 촉진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의의가 있는 희곡을 남기지 못했다. 따라서 르네상스가 다른 분야의 예술에 대해서는 큰 자극을 주어 새 의미의 발전, 휴머니즘 사상의 이해를 가능케 하여 그야말로 부흥·발전을 갖고 오게 했지만, 최소한 연극 분야에 대해서만은 이렇다 할 충동적인 영향을 줄 수 없었다. 국내의 정치 사정, 학자들의 어설픈 고전극 법칙의 강요, 연극인들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대한 흥미 등, 그 원인은 이미 기술한 바 있다.
이근삼, 서양연극사, 탐구당, 1980 P.48 ~ 51